[ 테마 Interview ]
부정적 상상의 기술(Worst case thinking)로 미래 리스크에 대비하라
https://youtube.com/watch?v=rLR655lZ4I4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기업에 발생하는 배드뉴스 관련 대비책과 대응책 전문 컨설턴트로 세계 최대 PR 컨설팅사 에델만 한국법인 사장을 역임했고, 2007년 ‘THE LAB h’를 설립하여 위기관리, 리더십, 조직 커뮤니케이션 분야 컨설팅 및 코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쿨하게 사과하라(정재승 공저, 2011)』, 『쿨하게 생존하라(2014)』가 있으며 조선일보, 동아비즈니스리뷰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일상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는 ‘위기의 일상화’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수시로 벌어지며 불확실성 또한 굉장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위기가 어쩌다 한번씩 터졌다면, 지금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작은 위기에서부터 기업의 존속을 위협하는 경영상의 거대 이슈까지 위기의 범주와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리스크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현대 기업조직들은 위기 예방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보험 가입을 주저하는 마음에 빗댈 수 있습니다. 미래에 생길지 모를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심리적인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배드뉴스(bad news)’를 미리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굿뉴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까를 예상하는 일은 꺼리게 됩니다. 자연스레 위기에 대해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게 되죠. 오히려 위기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심히 대응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인정과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가 나쁜 일을 대비하는 일에 유독 게을러지는 이유입니다.
부정적으로 사고하라
사실 기업들이 겪는 불행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리 조직적으로 배드뉴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일단 미리 따져본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에 사용하는 상상의 기술은 쉽게 말해 ‘부정적 상상의 기술’입니다. 위기사건을 예방하는 데 낙천적이고 긍정적 사고는 독약입니다. 즉 ‘괜찮겠지…’ ‘설마 일이 그렇게까지 악화되겠어?’라는 생각은 금물이죠.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머피의 법칙’입니다. 사실 이 법칙의 중요한 의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개발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배드뉴스의 판을 깔아라
조직 내에서 부정적 이야기는 소위 누군가 나서서 ‘판을 깔아주기’ 전에는 절대로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위기를 찾아내는 워크숍(Issue identification workshop)’이 수행할 수 있는데요. 워크숍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최악의 부정적인 사고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질서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문화에서는 더욱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그 자리에 CEO를 비롯, 조직 내에서 각기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부서의 책임자로 구성된 최고 경영층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경험과 관점, 정보와 예측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며 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관부서의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자들이 한데 모여 배드뉴스를 논의하면 위기의 80%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위기들도 존재하죠. 중요한 것은 특정 위기를 가정해 훈련해 본 조직은 전혀 다른 위기가 발생했어도 대응이 빨라지더라는 겁니다.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놓고 평소에 연습한 소방대원과 그렇지 않은 대원 중 누가 실제 화재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배드뉴스가 현실이 되기 전에 위기 대응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죠.
레드팀을 운영하라
기업조직이 활용할 수 있는 위기를 관리하는 또 다른 방법은 경영진의 판단에 딴지 걸고 반대 의견만 제시하는 ‘레드팀(Red Teams)’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레드팀’은 미국 드라마 ‘뉴스룸’을 통해 잘 알려진 개념으로 일종의 ‘의도적 견제팀’입니다. 즉 뉴스룸에서 취재팀이 조사와 심층취재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보도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이 정확하고 제대로 취재돼 보도할 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 검증합니다. 모든 것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봐서 오점이 없는지를 찾아내게 하는 것이죠. 위기상황에는 이러한 레드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긴장과 엄중함에서 사건을 다루면서도 뉴스는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대응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 CEO는 위기가 닥쳤을 때 객관성과 전문성을 갖춘 또 하나의 팀을 갖고 있어야 하고, 레드팀은 CEO를 견제하면서 그가 잘못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비단 언론사에만 레드팀이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드팀의 미션은 우리의 주요 의사결정과 사업활동에 대해 반대입장에서 공격을 퍼붓는 것입니다. 레드팀의 공격을 CEO가 계속 관찰하면서 과연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중에 잘못이나 실수, 누락은 없는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신제품 출시에는 고객과 투자자 등 회사 안팎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신제품 출시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원점에서 되짚고 비판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우리 팀에서도 내년도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수립하는 과정에서 레드팀을 구성,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 ‘걱정을 사서 한다’와 같은 속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미리 걱정해 보기’를 정기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가는 기업은 자신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연습합니다. 위기를 수동적 관리 대상이 아닌 ‘리드’할 수 있는 상대로 바라보는 것이 성공적인 위기관리의 출발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