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찬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가르다. GS칼텍스 윤활유 공장 정기훈 주임
‘이 세상에 남자는 바이크 타는 남자와 바이크 타고 싶은 남자, 딱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이 말에 ‘그래, 맞아!’하며 무릎을 탁 쳤다면 당신은, 이미 짜릿한 스릴에 몸을 맡긴 채 시원한 바람을 타고 라이딩을 만끽하는 바이크 마니아거나, 차마 발을 디디진 못했지만 바이크에 대한 무한 애정과 동경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평화로운 어느 오후, 윤활유공장에 우람한 덩치에 우렁찬 소리를 내뿜는 바이크와 함께 나타난 바이커 정기훈 주임을 만나봅니다.
중년 남자 가슴에 불을 지피다
2006년 늦가을 집사람과 함께 강원도 오대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데 주차장에 멋진 바이크 한대가 서있었어요. 여기까지 바이크를 끌고 오는 열정이 대단하다 생각했죠. 잠시 후 바이크 주인이 나타났는데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어요
노부부는 가죽 재킷을 한껏 갖춰 입고 시동을 건 다음 낙엽이 쌓인 도로를 배기음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그 배기음과 흩어지는 낙엽을 보며 느낀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는 정기훈 주임.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바이크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았고 그 후로 멋진 바이크가 차창 옆으로 지나갈 때 마다 눈 여겨 보곤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즈음 아는 후배가“형님. 저 바이크 면허 땄어요” 라는 말을 듣고 125cc이상 바이크는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 주임은 다음날 곧장 학원으로 달려갔지요.
일주일 만에 면허를 취득한 후 봉착한 문제는 아내 설득하기. 대한민국의 어떤 아내가 남편이 바이크를 탄다는데 “참 좋은 취미에요. 얼른 한대 사가지고 타세요” 라고 반기겠습니까. 정 주임은 차분히 기회를 노렸습니다. 평소 안 하던 청소며 빨래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아내에게 넌지시 면허증을 내밀은 것이지요.
“면허 갱신했어요? 사진이 바뀌었네”
“아니, 그 위에 면허종류를 한번 봐봐”
“2종 소형? 이게 뭐에요?”
“음, 그게 뭐냐하면.. 바이크 면허야.”
아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거실로 나가 버렸습니다.
예상보다 더 강한 아내의 반응에 정 주임은 일 주일 후 다시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결혼해서 지금까지 회사, 집, 당신, 아이들에게 올인하며 살아 왔다” 구구절절 이야기 끝에 오대산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를 꺼내며 함께 다니자고 설득 했습니다. 힘들게 얻어낸 아내의 윤허가 떨어지자 기대 이상으로 진척도가 빨랐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법한 로망!
바이크 타고 훨~훨~ 정 주임은 바로 센터에 가서 이것저것 바이크를 구경했습니다. 학원에서 연습용으로 타던 미라쥬250cc는 이제 장난감같이 느껴졌지요.
정 주임은 처음 산 혼다의 쉐도우750cc 중고 바이크를 6개월 가량 탔습니다. 처음 며칠은 맞아보지 않은 바람 때문에 도저히 엑셀을 당길 자신도 없었고, 긴장감 때문에 팔다리며 허리 아프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파서 애초에 왜 시작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거리투어를 하면 실력이 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배들을 따라 인천에서 전남 고흥까지 2박3일간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떠난 장거리투어의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그 후론 자신감이 충만해져 인터넷을 뒤져 동호회 활동까지 시작했습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실력이 점차 늘어 어느덧 쉐도우750은 너무 작은 바이크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같은 혼다 계열인 VTX1800을 구입하여 6개월 정도를 탔죠. 아내를 자주 태워주는 편인데, 뒷좌석이 너무 불편해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호회에 같이 나가서 앉아보고 고른 것이 지금의 골드윙1800입니다. 지금은 아내가 뒷자리에 앉아서 자꾸 잠을 자요. 하하”
정 주임은 장거리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인천에서 속초 가기, 동해안 7번 국도 라이딩, 서해안 따라 여행하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여행은 인천항에서 바이크를 배에 싣고 제주도 투어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배로 제주도까지 가는 데만 14시간 걸려요. 저녁 7시에 출발해서 제주항에 아침 9시에 도착해서 3박4일 동안 다녔어요. 바이크로 제주도 두 바퀴 반을 돌았는데 250km도 채 안 되는 것 같더군요. 바이크에 비해 제주도가 너무 작은 섬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했고, 동행한 회원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어요”
그 때를 회상하는 정 주임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짜릿한 라이딩의 매력의 빠져보세요.
정 주임에게 바이크는 일상에서의 탈출이자 가장 확실한 에너지 충전입니다. 일단 바이크에 앉아 투어를 시작하면 모든 잡념이 다 사라지고 오로지 주행과 주변의 풍경들만 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헬멧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스트레스도 전부 날아가는 느낌이에요. 특히 강원도 국도에서의 라이딩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적당히 커브를 돌면서 라이딩을 하는 맛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진정한 바이크 마니아 정 주임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3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우천시 투어금지, 둘째 야간 투어금지, 셋째 겨울철 투어금지.
“투어 중에 비가오면 바이크를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투어가 계획됐더라도 당일 아침 비가오면 투어는 취소됩니다. 또한 가급적 복귀 시 출발을 일찍 해서 야간투어가 되지 않도록 합니다. 겨울철에는 눈이 오지 않더라도 낮은 온도로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어 원활한 라이딩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행렬 간격유지, 안전장구필수, 수신호요령 숙지 등 많은 안전 규칙들이 있습니다”
안전을 이야기하는 정 주임의 표정이 진지하다 못해 결연합니다. 처음 바이크를 배울 때 기본부터 잘 배운 덕분이겠죠?
“도로에 나가 차들과 함께 바이크를 타기 위해선 방어운전을 해야 하고 무리하게 폭주를 하면 안됩니다. 철저한 안전 의식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바이크에요”
정 주임처럼 바이크를 로망으로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임직원들에게 할 말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바이크를 시작하려면 아내에게 진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겉으로는 반대 하지만 노력 끝에 설득하고 나면 달라집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아내를 뒷자리에 태워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그러더군요.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 멋진 신랑 덕분에 바이크 투어도 해보고 정말 고맙다고요”
정 주임의 바이크 동호회 최고령자는 올해 68세로 항상 마나님과 함께 투어를 다닌다고 합니다.
“그 분의 바이크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생각하면 저는 아직 멀었죠. 안전 의식을 갖추고 정해진 규칙을 항상 지키면서 라이딩을 즐기려고요. 앞으로 평생요!”
정 주임의 20년 후가 기대됩니다. 6년전 오대산에서 정 주임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그 노부부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