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역사 속 지혜와 교훈은 지금의 기업과 조직 운영에도 많은 인사이트를 전달한다.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중 ‘올바른 사고’를 통해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그리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지중해 최강 전투함, 트리에레스
기원전 483년 아테네 남쪽 수니온곶으로 가는 반도 끝에 위치한 라우리온이란 곳에서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었다. 현대로 치면 유전이 터진 정도는 아니지만, 아테네 시민에겐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당연히 시민들은 은광의 수익을 주민에게 골고루 분배하기를 원했다.
이때 테미스토클레스가 나서서 은광의 수익을 무의미하게 소비할 것이 아니라 아테네의 발전과 장기적인 수익을 위해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투자의 대상은 해군력이었다. 지중해 최강의 전투함인 트리에레스(삼단노선)100척을 건조하고, 이 함대의 모항으로 피레아스 항구를 건설했다. 아테네에서 지하철로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피레우스 항구는 지금도 그리스 최대의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트리에레스의 크기는 길이 40미터, 폭 6미터 정도였다. 선원은 약 200명으로 노꾼이 170명 나머지 인원이 선원과 전투병이었다. 트리에레스의 주특기는 선두에 장착한 충각*(충각: 군함 밑 뾰족하게 돌출된 부분)으로 적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전복시키거나 기동불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적선이 기울거나 기동불능이 되면 해병에 해당하는 중장보병이 적선에 돌입해 백병전을 벌였다.
충돌기법은 자동차 스턴트의 드리프트와 유사하다. 이것은 최고난도의 기술로 트리에레스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력 10년 이상의 선장이나 가능했고, 드리프트가 가능한 선장은 몇 배의 보수를 받았다. 능력 있는 선장과 선원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도 해군력 강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전성기에 아테네 함대의 수준은 압도적이어서 같은 트리에레스를 사용하는 다른 폴리스의 함대와 싸울 때도 드리프트 기술은 아테네 함대의 전매특허로 인식되었을 정도였다.
최고의 해양국가 아테네, 그러나 바다를 두려워했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건의로 아테네는 그리스 최고의 해양국가가 되었다. 제해권은 무역로 장악으로 이어져 아테네에 부를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함대가 준 최고의 선물은 아테네의 목숨이었다. 페르시아 황제 크세륵세스는 역사상 최대의 병력을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로 침공해 도시를 불태웠지만, 피레우스 항구 앞에 위치한 살라미스 해협에서 테미스토클레스의 함대가 페르시아 함대를 전멸시켜 버렸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독자는 적당한 교훈이 떠오를 것이다. 눈 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멀리 보고 크게 보자. 미래는 대비하는 자의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의 주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테네가 위치한 아티카 반도는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그리스가 토지가 척박하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표면에도 흙이라고는 없다시피한 이곳의 지질은 거의가 메마른 암반이다. 바위산에는 나무는커녕 풀도 자라기 힘들어서 서부극에 나오는 텀블위드같은 잡초만 자라난다. 이런 땅이라면 농업을 포기하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아티카 반도는 삼면이 푸른 에게해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사람들은 해상무역국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테네 주민 중에 무역업자, 선원들이 증가하고 있었지만, 아테네의 지배층, 상류층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삶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했다. 성공이 불확실한 투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아테네가 가진 해상무역국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그것을 증명한 것은 아테네인이 아니라 아테네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 아이기나였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올바른 사고가 전하는 교훈 두 가지
오늘날 피레우스 항구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아이기나는 아테네 주민들이 주말에 방문하는 아담한 휴양지이다. 아테네 주변과 마찬가지로 하얀 바위 밖에 없는 이 섬에는 폐허가 되었지만 아주 훌륭한 아폴로 신전이 항구를 굽어 보고 있다. 이 신전은 아이기나 전성기의 유적이다.
일찌감치 바다로 눈을 돌린 아이기나는 에게해 상권을 독점하고 부를 누리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아이기나를 부러워했지만 감히 이 작은 섬나라에 도전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데미스토클레스가 육성한 함대의 목표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 아이기나 해군이었다. 라우리온 은광이 발견되고 나서야 아테네는 겨우 용기를 냈고, 최강의 해군이던 아이기나를 제압하고 제해권을 넘겨 받았다.
이 이야기가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올바른 사고란 올바른 판단만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추진할 수 있는 용기를 수반한 사고라는 것이다.
아테네인들이 그랬듯이 올바른 판단은 멀리 있지 않고, 알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 그것을 시인하고, 변화가 주는 불편함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데미스토클레스는 해군력 육성을 주장하면서 페르시아의 침공 위협은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 그가 페르시아의 침공 위험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아이기나의 해상무역권을 타겟으로 하는 설득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다.
인간에게 부를 향한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침공위험을 강조하면 아테네 시민들이 거부할 위험이 높았다. 페르시아인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침략에 대한 공포는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페르시아의 침공위협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것이었다. 미래의 가능성을 설득하는 것보다 미래의 위험을 설득하는 것은 훨씬 힘들다. 그 위험이 공포스러울수록 더욱 힘들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그것이 틀린 판단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데에는 천재적인 창의력이 잠재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페르시아와 벌인 마라톤 전투가 겨우 7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아테네인들은 침략의 위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데미스토클레스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부정하는 인간의 본성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간파하는 통찰이 있었다.
바로, 이 이야기 속 두 번째 교훈은 올바른 사고란 정확한 분석과 통찰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세와 통찰이 데미스토클레스를 그리스의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아테네를 구했다. 이 구원이 없었더라면 소크라테스도 서구 문화의 요람으로서 아테네의 위상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직장 내 조직도 비슷하다. 목표를 위해서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처럼 급변하는 환경을 마주할 용기, 변화가 주는 불편함을 수용할 자세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냉철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바로, 올바른 사고를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임용한 대표
연세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사와 전쟁사에 관해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전쟁과 경영, 리더십을 접목한 강연과 집필을 하고 있다. 현재는 국방TV에서 세계 전쟁사를 강의하는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