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디지털과 함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먹고 자고 즐기는 모든 것에서, 과거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의 방식이 자리를 잡아, 그 이전의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의 유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은 우리 일상 생활의 상당 부분에서, 안써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고 하는, 혁혁한 성과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편 화학 산업과 같이 전통 굴뚝 B2B 산업의 경우는, 소비재/서비스 산업에서의 디지털 변혁 정도는 아닐 것이고,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본문에서 글로벌 선도 화학 기업 들이 벌이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살펴보면서, 화학 산업 또한 디지털 혁명 시대에 자유롭지 않고, 이미 큰 변화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화학 산업에서 ‘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화두가 되고 있는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 잠재 파급력이 ‘파괴적 (disruptive)’일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파괴적 변화의 시기가 이미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전조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파급 영향의 범위를 살펴볼 때, 불과 몇 년 전 유행했던 ‘Industrial 4.0’ 내지 ‘스마트 팩토리’가 주로 플랜트 생산과정에 국한된 측면이 강했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고객 접점 및 협업 관점, 또는 제품/서비스의 연계 관점까지 그 파급 범위가 비즈니스모델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그 정도를 살펴보더라도, 과거 아날로그 방식 대비 ‘일부 개선’ 정도가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게임’을 논할 정도로 각 영역에서의 큰 변화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즉, 오퍼레이션 단위에선, 새로운 빅 데이터, advanced analysis, supercomputing, 5G 등의 방식으로, 과거 아날로그 방식의 원가절감의 한계를 초월하는 노력들이 진행 중입니다. 아울러, 고객 관계 역시 B2B 영역에서의 아마존과 같이 one click interface 내지 플랫폼화 또는, 과거 spec 기반 과금방식에서 성과 연계 과금방식과 같이 디지털 세상에서만 가능한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시도에 그치지 않고, 초기 성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그곳에 시장의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 이제는 화학 산업에서도 디지털이 잠복기를 벗어나 초도/고도성장기로의 빠른 변화를 앞두고 있는 방증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06년-18년)을 살펴보면, 벤처 캐피털이 과거 IT나 소비재/서비스 영역을 벗어나, B2B 산업재에 투자하는 금액이 약 700% 이상 증가하고 있고, 주요 선도 화학 기업들은 더 이상 화공 및 신소재 전공 연구진/기술진 외에, data scientist, AI 전문가 등을 주축으로 한 디지털 think tank를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먼 미래 이야기도, 타 산업 이야기도 아닌 화학 산업 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화학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선도사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선도사들의 디지털 관련 동향을 살펴보면, 큰 흐름상의 공통점이 보이는 한편, 추진상의 각론을 살펴보면, 나름의 차이점들도 확연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공통점을 살펴보면,
1) 미래 시장에서의 디지털의 파급 영향에 대해서는 다들 ‘파괴적’인 변화를 예상하며, 그 안에서
2) 위기를 사전 예방하는 한편, 새로이 열리는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인데,
3) 그 노력의 구심점이 회사 내 IT 부서나 혁신 부서에 국한되지 않고 최고 경영진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디지털은 하나의 기능이나 기법이 아닌 기존/미래 사업모델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전개하는 방식과 철학에는 업체마다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요. 예컨대 글로벌 1위 화학 기업인 독일의 BASF의 경우는 디지털 시대 화학 산업의 구글, 아마존이 되려는 것처럼 중요한 길목을 선점하기 위한 1) 광범위하고, 2) 실험적인 투자를 마다 않는 선구자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그 뒤를 따르는 미국의 Dow DuPont을 보면 그 적극성엔 큰 차이가 없지만, 1) 자사 비즈니스 모델과 연계한 2) select & focus 된 영역에서의 집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보다 범용제품의 비용 효율성을 추구하는 Dow는 제품 생산-supply chain-고객관계에 이르는 전반에 있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의 디지털 과제에 집중합니다. 특화된 프리미엄 차별화 제품에 집중하는 DuPont의 경우, 높은 개발 비용과 실패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고객 니즈 맞춤형 프리미엄 제품/서비스를 지속 착안/개발/출시하기 위한 고객 협업과, closed loop feedback 구조를 구현하기 위한 디지털 협업 체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 방침과 연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들입니다. 예를 들면, 벨기에의 Solvay의 경우 자사 포트폴리오를 보다 프리미엄 차별화 혁신 제품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포트폴리오 트랜스포메이션을 계획하던 중 이를 디지털과 병행해 그 속도와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고 있고 한편 실적 둔화와 경쟁력 약화에 시름하던 남아공의 Sasol은 전사 turn-around를 추진함에 있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돌파구와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의 전개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선도사들은 디지털과 관련해 모두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선도업체 그 누구도 남을 따라 하는 방식이 아닌 저마다의 상황과 목적에 맞는 방식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최근 국내 업계를 살펴보면, 정말 한국인의 속도감 있는 정열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습니다. 2002년 붉은 악마, 2015년 촛불 집회가 광화문 광장을 휩쓸었듯 2019년 한국 화학 산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열풍에 휩싸인 듯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는 시대의 흐름에 충분히 부응하는 모습이고 과거 IT와 인터넷에서 그랬듯 발 빠른 전개가 글로벌 경쟁 구도 하에서 국내 화학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와 연결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기업에서 몇 개 유행처럼 번지는 디지털 과제, 즉, 드론 몇 대 날리고 솔루션 몇 개 도입하는 방식의 보여주기 성격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오히려 조직 내 무력감을 조장해 이후 제대로 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기회조차 막을 수 있기에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국내 기업들에서 정말 시급한 것은 기업마다 갖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통해, ‘디지털이 무엇을 해줄 수 있나?’를 찾기 보다 ‘디지털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고민에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