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자일 강의나 워크숍 참여자들이 IT 계열 종사자들뿐 아니라, 전략, 혁신, 기업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들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현재 조직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업무 영역에 애자일 조직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조직문화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 등 애자일에 관심을 갖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애자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애자일(Agile)의 개념, 종류 그리고 우리 조직에 자연스럽게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애자일,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 경제, 특히, 일본 제조업의 기세는 엄청났습니다. 60년대에는 삼류 취급을 받던 일본산 제품들이 빠르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해나가자, 80년대 후반부터 미국 업계는 일본이 이룩한 생산성의 비밀을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식 제조업의 장점인 대량생산, 표준화, 효율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의 한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일본 제조업의 특징인 낭비 제거, 지속적인 개선 등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죠.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일본식 제조업인 린 제조(Lean Manufacturing) 개념을 반영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들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린 제조방식은 초창기 애자일리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애자일 방법론이라고 불리는 스크럼(Scrum), 익스트림 프로그래밍(XP, Extreme Programming), 기능 주도 개발(FDD, Feature-Driven Development), 적응형 소프트웨어 개발(ASD, Adaptive Software Development) 등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 린 제조방식 :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경영 방법론의 일종이다.
애자일의 두 가지 흐름: 첫 번째, 상향식 애자일 (Bottom-up Agile)
애자일(Agile)이라는 명칭은 2001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거장들은 각자 다양하게 운영해온 방법론들이 알고 보면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2001년 2월, 한자리에 모여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문’을 발표하게 되죠. 그 후 애자일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애자일과 관련된 다양한 도서들이 발행되었고, 콘퍼런스, 워크숍, 세미나 등이 개최되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는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애자일 실천법을 적용하여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애자일 실천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주 또는 2주의 스프린트(Sprint)마다 출시 가능한 제품을 내놓은 뒤, 그것에 대해 고객의 피드백을 받고, 제품 책임자(PO, Product Owner)는 모든 할 일을 백로그(Backlog)라는 이름의 목록으로 관리하며 수시로 우선순위를 조정합니다. 그리고 팀은 간반 보드(Kanban Board) 또는 작업 현황판(Task Board) 앞에서 매일 15분씩 일일 스탠드 업 미팅(Daily Stand-up Meeting)을 하며 정보를 공유하며, 마지막으로 정기적인 회고(Retrospective)를 통해 일하는 방법을 개선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애자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애자일 실천법은, 그 첫 번째 흐름인 상향식 애자일(Bottom-up Agile)에 해당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상향식 애자일은 실무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애자일 방법론입니다.
*스프린트 :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하는 개발 사이클
*간반 보드 : 포스트잇으로 업무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보드의 일본식 용어
애자일의 두 가지 흐름: 두 번째, 하향식 애자일 (Top-down Agile)
2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상향식 애자일 방법론은 다양한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어마어마한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커다란 아쉬움이 있었죠. 바로, 팀 단위에서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 있었지만, 그것을 전사 차원으로 확대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애자일 실천가들이 상향성 애자일 방법론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커다란 조직에 적용시키는 데에는 거듭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애자일 조직은 스타트업처럼 작은 회사에만 적합하다’ 혹은, ‘작은 조직 단위에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큰 조직의 차원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라는 등 애자일 적용 범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에 커다란 이견을 불러온 회사가 등장했으니, 바로 스웨덴의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였습니다.
2012년 10월, 스포티파이(Spotify)는 자신들의 조직 구조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였습니다. 스포티파이는 크게 네 가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스쿼드(Squad) : 여러 직무를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고객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
- 챕터(Chapter) : 같은 직무를 하는 사람들이 속해있는 조직
- 트라이브(Tribe) : 여러 스쿼드를 묶어놓은 조직
- 길드(Guild): 여러 트라이브를 넘나들며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조직
이러한 스포티파이의 조직 구조는 큰 화제가 되어 수많은 회사들이 그 조직 구조를 모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의 ING 은행입니다. ING 은행의 성공적인 사례가 널리 알려진 후, 금융권을 필두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이 스포티파이 모델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기존 보험사에는 상품을 설계하는 조직,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조직 그리고 보험 상품을 운영하는 조직이 모두 따로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포티파이 모델을 도입한 보험사에는 ‘2030 스쿼드’ 같은 조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스쿼드는 20대~30대가 선호하는 보험 상품을 다른 조직의 도움 없이 직접 설계, 판매, 그리고 운영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애자일의 두 번째 흐름인, 하향식 애자일(Top-down Agile)입니다. 하향식 애자일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여, 조직 구조 및 기업 문화의 변화를 추진하려는 경영진의 니즈로부터 출발한 애자일 방법론입니다. 애자일의 첫 번째 흐름인 상향식 애자일(팀 단위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이뤄내는 애자일 기법) 과는 상이한 흐름입니다.
상향식 애자일과 하향식 애자일의 조화로 이루어내는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
과거 20년 동안 애자일 세계의 주류였던 상향식 애자일의 운영이 작은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변화에 대한 경영진의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경영진들은 애자일을 그저 하나의 개발 방법론, 또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라고 여겼기에, 직원들끼리 알아서 하면 될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혁신의 움직임은 경영진의 스폰서십을 얻지 못하였고, 결국 작은 조직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이죠.
반면, 최근 화두 되고 있는 하향식 애자일의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문 이유는, 구성원들이 아직 변화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애자일은 단순히 계획만 세우면 바로 도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조직 안팎으로 정보가 투명하게 흐르도록 만들고, 구성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도를 통해 학습과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바로 애자일의 핵심인 것입니다.
애자일 혁신에 성공한 스포티파이는 자신들의 조직 구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우리는 빠르게 진화하는 회사입니다. 당신이 이 문서를 보고 있을 즘에 우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 문서는 우리가 한때 일했던 방식의 스냅샷에 불과합니다. 변화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애자일을 우리 업무에 적용하는 비결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봅시다. 경영진과 구성원 중 한 쪽에서만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는 않나요?
애자일 혁신에 성공한 스포티파이에는 오랫동안 상향식 애자일을 통해 변화를 추구해 온 구성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경영진이 하향식 애자일을 통해 그 움직임을 뒷받침해주었던 것이죠.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모든 회사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존재했습니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은 일방의 노력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한 쪽에서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업무 방법에는 총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변화된 조직 구조에 힘겹게 적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와 내 주변부터 작은 애자일 프랙티스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팀원들의 주변에 화이트보드를 하나 마련하여 작업 현황판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변 팀원들이 호응해주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더 작게 시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내 책상 위에 나만의 작업 현황판을 한 번 만들어보세요. 또, 팀원들과 함께 다음 주에는 무엇을 다르게 시도해볼지 이야기를 나누는 회고 자리를 마련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몇 번만 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도출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분명히 잘 안될 겁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패로부터 학습하고, 다음에는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 시도해보는 것이 바로 애자일이니까요.
애자일 조직문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 최근 대한민국의 애자일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 상향식 애자일 : 주로 IT분야에서 실무자들이 자발적으로 제품 및 서비스 개발 방식을 개선하는 애자일 방법론
- 하향식 애자일 : 경영진이 조직 구조를 바꾸고 업무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담긴 애자일 방법론
-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에는 상향식과 하향식 두 가지 모두 반드시 필요하며, 경영진이나 구성원 중 일방의 노력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 구성원들은 작은 범위 내에서 개인이나 팀이 시도해볼 수 있는 애자일 프랙티스를 통해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에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