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게 역사를 묻다 – 제10편] GS칼텍스 사택(社宅) 변천사
택(宅),, 사람이 의지하며 사는 집
의식주(衣食住)는 입고 먹고 자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禮節)’거나, ‘거처가 든든해야 먼 길을 떠나도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의식주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택은 기업체나 기관에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제공하는 사원주택이다. 경우에 따라 단일 건물로 그치지 않고 주거단지를 이루기도 하지만 회사의 ‘장구미 사택’과 ‘쌍봉 사택’은 주거단지라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장구미 사택 – 회사 복지의 출발
여수 최초의 사택
1967년 회사 설립 당시 여수는 인구 10만 명의 중소도시였다. 지금의 장구미 사택의 골프 연습장과 사원아파트 사이에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던 조그마한 어촌이 사택으로 개발하기 전의 모습이다. 사택의 이름도 이곳의 지형이 길쭉한 모양이라 긴 골, 즉, 장구미(藏龜尾)라 불린 것에서 따 왔다. 월내동(月內洞)이란 현재의 행정지명도 ‘달’의 안쪽 마을(月內)에서 온 것이다.
1967년 당시 여천군 삼일면 월내리 일대는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었다. 공장건설을 위해 온 외국인들과 타지에서 온 임직원들에게는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회사는 임직원의 사기가 생산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공장건설 초기에 숙소와 편의시설을 완비한 사택단지를 먼저 건설했다.
장구미 사택의 건설
장구미 사택은 백색 콘크리트조에 청기와를 얹어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구미 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클럽하우스 2층의 전면은 대형 유리창이어서 광양만 일대의 절경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장구미 사택은 1967년 9월 트랜스아시아가 설계 구매 및 감리용역을, 대림산업이 건설공사를 맡았다. 특히 클럽하우스와 영빈관은 영친왕의 둘째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손인 이구(당시 트랜스아시아 부사장)가 설계했다.
1967년 11월 먼저 B형 독신자숙소 건설에 들어갔다. 다음해 3월 완공해 여수 시내 호텔 등에 머물고 있던 외국인 기술진이 이곳으로 숙소를 옮겼다. 1969년 4월 장구미 사택단지를, 9월 영빈관, 클럽하우스, 수영장, 테니스코트를 준공했다. 1971년 7월 31일에는 아파트 2동(28세대)과 유치원을, 1979년 9월 15일에는 72m²(22평) 규모의 아파트 6세대와 30m²(9.2평) 규모의 독신자 숙소 12실의 BQ-C를 완공했다. 1986년 1월 14일 연립주택을 증축했으며, 8월 12일에는 사원아파트(28세대)를 62.8m²(19평)에서 84.6m²(25.6평)로 증축했다. 2000년 5월에는 109m²(33평) 아파트 30세대를 준공했다.
장구미 사택은 단독주택 42세대, 연립주택 16세대, 아파트 28세대, 독신자 숙소(BQ) 51실, 영빈관, 클럽하우스, 수영장, 테니스코트, 골프 연습장, 매점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신축과 개축이 이어져 지금은 총면적 12만 6,972m²(3만 8,409평)의 부지에 아파트 30세대, 단독주택 30세대, 독신자 숙소(BQ) 57실, 비치하우스 23실, 영빈관, 클럽하우스, 테니스장(2면), 수영장, 골프 연습장, 탁구장 등을 갖추고 있다.
자연을 살린 아름다운 공간
하얀 벽 위에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청기와 집들이 제자리를 잡고 편하게 가라앉아 있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양 옆으로 빨갛고 노란 장미꽃이 피어 있다. 수양버들이 보기에도 여유롭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늘거리고 있고, 수십 년 묵은 동백나무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까이는 광양만, 멀리는 노량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주위의 크고 작은 섬들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고급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자태에 모두가 찬탄을 금치 못하는 곳이 바로 장구미 사택이다.
1960년대에는 부수고 밀고 평지를 만들어 성냥갑처럼 네모 반듯하게 무언가를 짓는 행위를 개발의 표준으로 여겼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 믿었다. 그런 시기에 장구미 사택은 자연이 주는 곡선과 외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렸기에 건축물인 ‘사택’에 ‘아름답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에 더해서 임직원들이 20년 이상 사택단지 주위에 소나무, 편백, 백목련, 회양목, 서향나무, 자목련, 미루나무 등 약 1만 그루 이상을 식수하고 보살펴서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고유한 문화를 키우다
여수공장 준공 초기에는 장구미 사택을 소(小)유엔(UN)이라고 불렀다. 당시 공장 가동을 위해 거주한 외국인과 부인의 국적을 합쳐보니 20개국이 넘어서 생겨난 말이었다. 그러나 1972년이 되면서 공장이 안정적으로 가동되자 외국인들은 하나 둘 사택을 떠났다. 외국인이 떠나고 독립된 사택들만 있어 한적했던 사택단지는 이후 아파트와 유치원 준공에 따라 28세대, 100여 식구를 맞으면서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아파트라는 단절감을 극복하고, 함께하고 소통하는 사택문화가 조성됐다.
아침 7시에는 음악에 맞추어서 신나는 체조가 시작되고, 체조가 끝나면 자기 집 주위를 청소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마라톤, 등산, 낚시, 요트, 사격, 테니스, 합창, 독서 등의 각종 취미생활을 같이하며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 문화(Culture)라는 말 자체가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 콜레레(Colere)에서 유래한 것을 알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사택을 어떻게 가꾸고 키워야 하는가를 알았다.
사택부인회가 주축이 돼 자매마을인 율촌면 소재 장도를 방문해 따뜻한 정을 나누었고, 사회복지시설을 매월 정기적으로 방문해 급식·청소 등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해마다 이웃돕기 기금 마련 장터를 열어 생긴 수익금을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의 치료비와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사택에 입주하고 퇴거하는 사람들을 위한 환영회와 송별회가 열렸고,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열리는 산행과 체육대회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 대청소 날을 정해서 장구미 사택이 가진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동질성, 공동체 의식, 지역과의 소통, 공간 운영의 매끄러움이 이렇게 형성됐다.
또 다른 기능, 의전(儀典)
장구미 사택이 1970년대부터 서울의 특급호텔보다도 훌륭한 의전 기능 수행이 가능했던 것은 클럽하우스와 영빈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빈관은 당시 어느 호텔보다도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곳으로 인정돼 고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 2명의 국가원수가 묵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국가계획위원회(SPC) 위원장 일행, 베트남 국제협력국장 일행, 루이스 리와낙 필리핀 제1 경제부총리(대통령 경제고문) 일행, 토마스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미국대사 등이 묵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해외고객 초청 행사도 매끄럽게 수행했다.
대내적으로는 1971년 상공부장관 방문을 시작으로, 동력자원부장관, 국회 보사분과 위원단 방문 등 무수한 행사를 훌륭히 치러냈다. 뿐만 아니라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입사 선배들의 퇴임식 송별연과 혹서기 현장 생산 활동에 여념이 없는 임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만찬 공간으로도 활용돼 진가를 발휘했다.
쌍봉 사택- 장구미와 판교를 벤치마킹하다
쌍봉면에 자리잡은 두 번째 사택
1970년대 중반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여수국가산업단지는 회사 여수공장을 중심으로 20개에 가까운 석유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규모 공업단지의 면모를 갖추었다. 여수시 역시 1980년대 들어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경제도 활성화돼 인구 17만 명에 번화한 도시로 발전했다.
1979년 당시 회사는 No.3 CDU를 건설하는 38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장구미 사택은 포화상태에 달했다. 13년 전에 세워진 사택의 규모로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임직원들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회사는 여천군 쌍봉면 소호리에 부지를 확보해 1979년 7월 10일 쌍봉 사택단지 건설에 들어갔다. 3단계에 걸쳐 진행된 건설공사는 1982년 4월 모두 완료됐고, 이후 1991년 90세대 아파트 1개동 증축, 테니스코트 3면과 관람석 증설, 유치원 증·개축, 1997년 12월 118세대 아파트 1개동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수공항에서 14.5km, 여수시청에서 3.2km, 여수공장에서 12km 거리에 있는 쌍봉 사택단지는 현재 대지면적 11만 3,312m²(3만 4,233평)에 단층연립 5개 동 20세대, 2층연립 9개 동 96세대, 아파트 2개 동 208세대 등 모두 324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부속시설로는 지하 1층, 지상 2층 1,597 m²(483평)의 영빈관 클럽하우스와 테니스장, 수영장과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장, 16타석 골프 연습장 등을 갖추고 있다. 법정 주차대수 248대보다 많은 418대 주차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행사 등을 치를 때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택선종지(擇善從之) – 좋은 것을 골라 따라 하다
나에게 없고 남에게 있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 질투라면, 모방(模倣)은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발전적 움직임의 출발이다. 내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선을 돌리면 답이 나온다. 쌍봉 사택은 회사가 동시대에 보유했던 두 공간을 스승으로 삼았다. 택선종지(擇善從之)의 마음으로 장구미 사택과 판교 종합수련소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쌍봉 사택은 판교 종합수련소처럼 여름철 휴양시설로 수영장과 클럽하우스를 운영했다. 사택 거주자를 포함해 여수와 순천에 거주하고 있는 사원과 가족들이 이곳을 찾았다. 클럽하우스는 한꺼번에 약 4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고 양식, 중화요리와 음료수를 제공했다. 여름철에는 순천에 거주하고 있는 사원 가족들을 위해 셔틀 버스를 운행했다.
항상 인기가 있는 8면의 테니스코트에서는 해마다 여수공장 테니스 동호인들과 가족들이 참석한 테니스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회사 테니스단이 창단 15개월 만인 1988년 5월 1일 열린 제2회 연맹회장기 쟁탈 테니스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쌍봉 클럽하우스는 다양한 행사를 치를 능력을 장구미 클럽하우스를 보면서 배웠다. 1981년 6월 9일 회사의 No.3 CDU 준공식 이후 내외귀빈 400여 명의 칵테일 파티와 오찬을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 불볕더위에 고생하는 현장 직원을 위한 격려의 공간, ‘Pacesetter 2000 관리자 워크숍’과 같은 교육을 진행하는 공간, 여수지역 중・고・대학생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1996년 8월 17일 제1회 테크론배(현재 GS칼텍스배 프로기전) 결승 2국이 이곳에서 개최돼 지역 바둑 애호가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날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의 승부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것은 쌍봉 클럽하우스에 마련된 특별 대국실과 넓은 잔디밭이었다. 훤히 트인 창문 왼편으로 자그마한 가덕도가 보이고 쪽빛의 남해가 펼쳐진 대국실은 분위기만으로도 명국이 두어질 것 같은 ‘전망 좋은 방’이었다. 조훈현 9단의 장고가 이어질 때 젊은 유창혁 9단이 분출하는 혈기를 다스리려 거닐던 대국장 앞뜰 잔디밭은 그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두고두고 그 좋은 공간을 추억했다.
사택에서 내일을 움직이는 힘을 얻다
1980년대에 들어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사택단지를 세웠다. 그런데 거주자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요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화되고 개성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과 효율성에만 치중해 획일화된 고층·고밀도 단지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주거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1968년에 만들어진 장구미 사택이나 1981년에 세워진 쌍봉 사택은 이런 문제점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임직원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만족도가 높은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물론 꼼꼼한 유지 보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전에 기본적으로 회사가 임직원 ‘삶의 질’의 하나인 사택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이 머물 ‘집’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구미와 쌍봉 사택은 오늘도 자신들의 품에서 편하게 쉬고, 즐겁게 보낸 뒤 회사로 출근하는 당신의 힘찬 모습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I am your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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