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순간,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독의 시간은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계획한 일들을 실행하기 위해 바쁘게 달려온 지난 과정 중 여러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고독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으신가요? 옛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을 통해 고독이 주는 풍요로움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임직원 여러분도 순수한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빈 배’를 노래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었지만, 우리 선조들의 노래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랜 전설처럼 면면하게 흘러내린 ‘어부가(漁父歌)’의 전통이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고려 스님 혜심의 초상화>
고려 스님 혜심(慧諶)이 지은 노래를 먼저 들어보시죠. “천 자 긴 낚시줄을 곧장 드리우니(千尺絲綸直下垂 천자사륜직하수), 한 가닥 물결이 살랑이고, 만 가닥 물결이 따라 움직인다(一波纔動萬波隨 일파재동만파수). 고요한 밤 차가운 물에 고기는 물지 않으니(夜靜水寒魚不食 야정수한어불식), 빈 배 가득 달빛 싣고 돌아오노라(滿船空載月明歸 만선공재명월귀).” 혜심의 한시에 운을 맞추어 다시 읊은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시조로 전하는 다음의 노래가 그러한 문학사를 반영합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성종(成宗)의 형이었지만 왕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풍류를 노래했던 월산대군의 마음 같다고 하여, 또한 ‘무심한 달빛만 싣고’ 온다는 표현이 하도 재미나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시조입니다. 그런데 이 왕자의 우리말 시조가 사실 고려로부터 이어지는 긴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빈 배 저어 밤길을 돌아오는 어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생산도 이윤도 전혀 없는 모습이라 처량하기 짝이 없는 꼴이죠. 생선을 가득 싣고 어깨춤을 추고 오는 어부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어부가’의 오랜 전통으로 보자면 어부의 ‘빈 배’가 더욱 풍요롭고 흥겨움을 주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조선 왕실의 잔치에서 왕(太宗)이 ‘어부가’를 청해 들었다고 전해지는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빈 배’를 노래 부르며 추구한 것은 쟁취와 소유 너머의 세계였던 것이죠. 역설(逆說)의 미학이며 역설의 진실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높은 관직에 오른 학자들도 그런 관점에서, 노상 어서 강호(江湖)로 돌아가서 어부가 되리라고 거듭 시를 읊었던 것이죠.
‘어부’가 되리
최북 <한강조어도(寒江釣漁圖)> 종이에 수묵, 25.8×38.8 개인소장
그림 속 인물이 그러한 어부입니다. 눈 내린 물 위에 ‘홀로 빈 배’를 띄운 이 완벽한 ‘어부’는 창 너른 삿갓에 두툼한 도롱이까지 뒤집어썼습니다. 그림 속 어부 등에 고슴도치처럼 삐죽한 필선들은 거칠고 성글게 짠 도롱이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춥고 외로워서 턱이 덜덜 떨릴 것 같지만, 선조들이 먼저 상상한 것은 ‘어부가’의 노래였죠. ‘
빈 배 저어’ 돌아가는 그림 속 어부는 오랜 전설처럼 흘러 내려와서 모두를 위로하는 존재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시 「강설(江雪, 눈 내린 강)」은 우리 어부가의 전통과 어울려 우리 선조들에게 사뭇 사랑받았습니다. 「강설」의 구절을 화제(畫題)로 얹은 산수화도 종종 그려지던 시절 속에서, 이 그림도 「강설」을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산에 새가 날지 않고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모든 길에 인적이 끊어졌다(萬徑人踪滅 만경인종멸).
외로운 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홀로 낚시하는 추운 강에 눈이 내린다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강마을의 밤 풍경은 옛 그림에서 즐겨 그려지던 화면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옛 그림의 설경은 겨울의 계절감이나 그 정취를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눈이 가득 쌓일 때면 이미 서서히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계절은 쉬지 않고 어김없이 바뀌면서 추위는 소리 없이 따스한 기운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설경은 암시합니다.
어부는 시간의 흐름과 우주의 이치를 감지하면서 의연하게 앉아 있습니다. 사람도 없고 새 마저 끊어진 겨울 저녁 늙은 어부 홀로 유유히 빈 배에 앉은 모습이란, 말하자면 ‘환상(幻像)’이며 철저한 고독의 바람이죠.
홀로 앉으라.
“너 성(聖)스러운 나의 고독이여, 너는 잠에서 깨어나는 정원(庭園)처럼 너무나 풍요롭고 순수하고 드넓구나.” 라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고독을 찬양했습니다. 시인은 동서고금으로 순수한 내면을 바랍니다. 싫거나 좋은 인간관계로부터 나만을 꺼내놓고, 지식과 생각의 질곡에서 나를 온전하게 찾고자 하는 의지인 것이죠.
그 결과, 자유(自由)로워진 경지를 누리고자 합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세상의 모든 시인들은 그러한 고독의 시간을 향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최근의 미국소설 『시간여행자의 아내 (The Timetraveler’s Wife)』에서 저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주인공인 시간여행자가 웅크리고 떨고 있는 어릴 적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재의 내가 우연히 어릴 적 나를 길에서 만난다면, 현재의 나는 어린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무어라 위로하며 용기를 줄까요?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나의 무수한 시간들과 화해하고 어루만지며, 나를 소중하게 키워주는 시간인 것이죠. 릴케가 노래한 고독이 정원처럼 풍요롭고 성스럽고 순수했던 이유는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순수한 내면과 그 내면의 풍요로움 때문입니다.
고독했던 화가
그림을 그린 화가는 그림 오른편 하단에 적혀있는 ‘호생관(豪生館)’입니다. ‘호생관’ 외에 ‘칠칠(七七)’이란 호도 있지요. 七자 하나를 뒤집어 자신의 이름을 ‘북(北)’으로 고쳤다는 화가 최북(崔北, 1712-약1786)입니다. 칠칠이라 하면 칠칠맞지 못한 놈을 부르는 듯하지만 사실 만물을 지어낸다는 신선의 이름입니다.
최북은 제 손으로 제 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알만 달린 안경을 걸치고 코를 찡그리며 그림을 그렸을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 오만의 광기와 독특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호생관이란, 그가 스스로 ‘붓으로 사는(豪 붓 호, 生 살 생)’ 놈이라고 소리 지른 일화와 함께 해설되곤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는 말은 원래 아니었습니다. 난생(卵生)은 알에서 나고 태생(胎生)은 태에서 나듯, 호생(豪生)은 붓에서 난다고. 그리하여 화가는 호생을 주관하여 붓으로 만물을 낳는다는 뜻이었죠. 이것이 원래 최북이 호생관을 호(號)로 취한 의미입니다. 우리도 무엇을 위해 사노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붓으로 살아먹는다고 소리쳤던 최북이 그랬듯이 말이죠. 그러나 화가는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눈 내리는 연말연시의 소란 속에서 마음 한 켠에 이 그림을 펼쳐 둔다면, 소중한 자신을, 나만의 풍요로운 고독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