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회사가 더 나은 결과를 내고자 합니다. 더 나은 매출, 더 나은 비전을 통해 더 나은 회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당연한 것이겠죠. 이를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를 영입하며, 많은 비용을 투자합니다. 언젠가부터 광고 카피에 빠지지 않는 ‘혁신’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버릇처럼 혁신을 외치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는 사이 만성에 젖어 생각하고 관성을 따라 일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게 되는 것이죠.
브랜드를 통해 세상을 향한 관점을 보고자 한 잡지
필자는 작은 잡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당시 대표(조수용 발행인)와 뜻을 같이하며 ‘매거진 <B>’의 창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편집장으로서 기획 및 제작은 물론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을 통해 국내외에 유통함으로써 해외에서도 판매되는 한국 잡지를 만들어내게 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출판 역사를 새로 썼다고 자평하곤 합니다.
종이 잡지는 죽었다고 말하는 요즘에 이뤄낸 일이기에 그 가치가 더했다고 말할 수 있고요. 매거진을 처음 기획하던 시기, 한 가지 중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기존의 매거진을 참고하는 게 아닌, 나 자신의 의식 흐름에 집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을 브랜드의 그것으로 치환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 탄생됐습니다. 기획은 물론 글이나 사진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과장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고 관찰하는 태도로 현상을 매거진에 옮기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의 매거진은 에디터와 포토그래퍼들이 재능 경쟁이라도 하듯 더 자극적인 표현이 만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매 호마다 브랜드를 선정할 때도 단순히 이슈가 되는 유명 브랜드가 아닌 매거진 <B>라는 하나의 ‘인격체’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했습니다.종이로 만들어진 매거진이지만 또 하나의 사람으로 대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랜시간 브랜드를 취재하고 책을 만들어 온 과정이 돌이켜 보면 모두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 온 수많은 브랜드를 관찰하고 통찰하며 세상을 보는 저만의 시선 또한 갖게 된 듯합니다. 좋은 브랜드는 매출 상승 전략만 있는 게 아니고 세상에 대하는 좋은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태도를 배우고 알아가면서 내가 가야 하는 방향도 바로잡게 됩니다.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
이미지출처 : 츠타야서점 웹사이트
지난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콘셉트를 달리하는 작은 서점들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책 판매가 줄고 책을 읽는 인구 또한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와중에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일본의 ‘츠타야’라는 브랜드가 알려지며 그러한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츠타야는 서점을 중심으로 감각적 인테리어와 창업자의 뛰어난 비전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에게 서점 비즈니스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200~300여 개의 서점이 생겼다고 하니 출판사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 최대의 서점도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다시 변화를 준 것에는 츠타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잡지와 책을 중심으로 연출한 새로운 공간들마저 빠르게 늘고 있기도 하고요.
필자는 그런 현상을 볼 때면 츠타야의 본질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책이 너무 좋아서 서점을 연 분들도 많겠지만 츠타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이 그 의미를 더욱 잘 이해했으면 하니까요. 츠타야는 설립한 1970년대부터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팔고자 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불던 라이프스타일 붐을 이어받아 창업자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미지를 팔기 위해 책, 잡지, 음반, 영화 DVD를 대여하고 판매한 게 그 시초였던 것이죠.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은 츠타야를 새로 생긴 핫 플레이스가 아니라 동네에 오랫동안 있던 책, 영화 대여판매점으로 기억합니다.
30여 년이 지나 매출 안정세와 투자를 통해 오늘날 핫한 브랜드로 변모한 것입니다. 외모는 세련돼졌고, 규모도 커졌지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기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전자 제품을 다루는 곳도 생기고, 매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등 기획의 예리함을 더 내세우고 있는 점일 것입니다. 츠타야를 단순히 인테리어 이쁜 서점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이유입니다.
동네에 자리한 가장 핫한 호텔
이미지출처 : 에이스 호텔 웹사이트
대부분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호텔을 우선 알아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예산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다음에는 목적지가 있다면 거리를 따지게 될 테고 거리가 중요하지 않다면 내부 인테리어를 확인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호텔의 가격을 비교해주는 서비스가 워낙 많이 나와 있어 어려움 없이 호텔 예약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세밀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거의 대부분의 호텔이 비슷한 인테리어와 메뉴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 비교’ 사이트가 더 많이 쓰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호텔은 잠시 잠만 자는 곳이라 특별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요. 어쨌든 호텔은 ‘숙박을 하는 곳’이라는 대명제는 시대가 변해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기 대명제에 반기를 든 호텔이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1호점을 열고 이후 포틀랜드에 2호점을 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에이스호텔’이 그것입니다. 1호점이 문을 연 지도 20여 년이 다 됐고 그 이후 이를 모방하거나 참고한 호텔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에이스호텔의 명성과 역할은 건재합니다. 에이스호텔의 공동 창업자들은 음악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왔을 때 좀 더 편하게 묶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포터가 늘 대기하고 로비에는 매서운 눈으로 손님을 맞으며 카펫이 깔린 우아한 방 대신에 말이죠. 스니커즈를 신고 타투를 한 젊은 청년이 손님을 맞이하고 카페에서 볼 것 같은 점원들이 카운터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일관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수 백여 개의 체인 지점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호텔이 있는 도시의 인상을 담아 전 지점을 달리하며, 그 주변 지역의 아티스트나 먹거리를 이용한 레스토랑을 운영함으로써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있고요. 이러한 에이스호텔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장면은 분명 로비일 것입니다. ‘에이스호텔 로비 씬’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에이스호텔의 콘셉트가 드러나는 임팩트 있는 곳입니다.
특별한 인테리어가 있어서가 아니고 어떤 지점은 카페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지점은 스타트업 회사의 라운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꼭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이곳을 이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지요. 공동 창업자들은 에이스호텔 이전에 이발소(바버 숍)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이발소와 호텔이 관계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집중한 것은 힐튼이나 하얏트가 아닌,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죠.
세상의 좋은 브랜드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혁신’을 외칩니다. 그러나 그 단어를 같이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체가 모호한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대신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에 집중하거나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다르게 접근함으로부터 혁신은 시작되리라 생각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을 맞아 전 인류가 코딩을 배우기 보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과 생각 그리고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인류 비즈니스의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이었던 회사 중 하나인 ‘애플’의 슬로건 ‘Think Different’를 되새기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