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 저, 『도시의 아이콘, 아트센터』 – “여수는 예울마루 개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예전에 한 방송국에서 저개발국을 돌며 마을에 우물을 파주던 프로그램 기억하시나요? 당장 마실 물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기도 하고, 온갖 어려움 끝에 물줄기가 솟구쳐 오를 때는 함께 박수치기도 했는데요.
얼마 전 서울에서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여수를 방문하셨던 한 기업의 관리자께서 “예울마루가 이 지역 문화예술의 우물을 파준 것”이라 극찬해주셨습니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표현도 감사한데, ‘우물’이라니 예울마루에 대한 말씀들 겸허히 듣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울마루에 대한 평가는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날아오기도 합니다. 현직 기자가 3년 동안 국내외 25곳의 아트센터를 찾아 다니며 발로 누비며 기록한 『도시의 아이콘, 아트센터』에 예울마루가 소개된 것입니다.
“한 때 문화불모지였던 성남을 비롯해 고양, 여수 같은 지역이 잘 만든 아트센터 덕분에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박진현 기자는 256쪽 분량의 책에서 성남아트센터, 고양아람누리, 예울마루를 비롯하여 일본 도쿄 산토리홀, 미국 필라델피아 킴멜예술센터, 싱가포르 에스플라네이드 등 국내외 주요 아트센터의 설립배경, 객석 구조, 무대와 객석 사이 거리, 잔향시간, 마감재 등을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박진현 저, 『도시의 아이콘, 아트센터』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책
국내에서는 14개의 아트센터가 이름을 올렸는데,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 등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 위치한 극장은 6곳뿐입니다. 게다가 광역시가 아닌 지방의 중소도시는 단 2-3곳에 불과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예울마루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아트센터를 주목하게 된 걸까요? 이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이 책의 여는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2006년 2월 미 국무성 초청으로 떠난 출장에서 겪은 일화입니다. 잠깐 소개해드리죠.
“이 날 내 시선을 끈 관객은 옆자리에 앉은 60대 중반의 엠마 할머니였다. 뉴욕에서 자동차로 4시간 넘게 걸리는 버팔로 시에서 왔다는 엠마는 나 못지 않게 설레는 모습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버팔로는 회색빛 도시다.
100년 전에는 불꺼진 날이 없을 만큼 번성을 누렸지만 지금은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서 황량한 도시로 전락했다. 엠마 할머니에게 문화생활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 것은 버치필드 페니 아트센터. 도심에 위치한 이 아트센터는 쓸쓸하고 황량해진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다양한 기획공연과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엠마는 클래식이나 뮤지컬과는 담을 쌓고 산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버치필드 페니 아트센터와 인연을 맺은 후 그녀의 일상은 180도 바뀌었다. 문화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의 취미로만 여겼던 클래식과 오페라에 눈을 뜨게 되면서 지역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음악회의 단골 관객이 됐다.”
저자는 아트센터가 단순히 전시회나 공연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들의 일상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문화발전소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책 제목 『도시의 아이콘, 아트센터』는 바로 그런 의미죠. 국내외 각 도시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문화인프라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아트센터가 곧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나아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브랜드가 되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심지어 아트센터를 한 도시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종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엠마 할머니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문화불모지에서 문화도시로, 문외한에서 문화애호가로 변화시키는 힘이 아트센터 즉, 문화센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예울마루 개관1주년을 맞아 성과들 소개해드리면서 “여수가 문화불모지에서 문화예술 산실이 되고 있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죠? 엠마 할머니가 우리 지역 여수에서, 버팔로 시가 여수시로 바뀔 날이 머지 않은 듯 합니다. 예울마루가 저자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아트센터 건립 전후의 변화가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겠죠.
책에서도 “남해안 벨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유명한(?) 문화불모지”가 예울마루 덕에 “더 이상 문화의 변방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수를 ‘남해의 진주’라면서 예울마루 개관 이전의 여수와 이후의 여수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사실 예울마루에서 일하고 있는 저도 그런 변화들이 조금씩 눈에 보입니다. 개관 초기에는 공연장 에티켓에 익숙하지 않아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거나, 지정좌석제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던 관객들이 이제는 공연 3-4달 전부터 중요 좌석이 매진되고, 이제는 익숙하게 앵콜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울마루의 부지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망마산과 장도 일대 70만㎡(약 21만평)에 이릅니다. 서울 예술의전당과 비교하면 약 3배 규모입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술의전당도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서예박물관, 한가람미술관, 디자인미술관까지 정말 큰데, 예울마루는 그 3배라니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예울마루의 규모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예울마루가 국내 공연마니아들에게 ‘꼭 가봐야 할 공연장’이 될 것이라 확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의 탄광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글로벌 관광도시로 변한 것처럼 남해안 관광레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도 언급하는데요, 저자의 바람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저자 박진현은,
지난 25년 동안 미술분야와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 등 국내외 문화현장을 취재하는 문화저널리스트
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미리보는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수도 초석을 깔자’, ‘선진미술관에서 배운다’,‘아트센터, 도시
의 브랜드가 되다’, ‘미국 대통령 기념관에서 배운다’ 등 다양한 기획물을 통해 문화인프라와 콘텐츠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지난 2006년부터 4년간 고정칼럼인 ‘박진현의 문화카페’를 광주일보에 연재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한 광주의 문화
지형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일조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유명미술관들의 컬렉션과 콘텐츠, 운영노하우 등을 조명한
‘처음만나는 미국미술관’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