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다 – 2014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
4월 18일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 동안 마라톤을 하게 된 동기와 과정들이 머리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불과 2년여 전에는 마라톤을 해 본 적도 없었던 제가 지금은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운동과 건강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분명 있었습니다. 2009년말 시신경이 죽어가는 녹내장 진단을 받고 두려움에 떨며 방황하다가 2010년 2월부터 금연을 시작하고 주말마다 등산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혹시나 하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종교적 믿음을 다시 찾게 되면서 두려움을 떨쳐내기 시작했고, 2011년 12월에는 회사 후배의 권유로 마라톤에 입문했습니다.
이번 보스톤마라톤에 참가하면서 기록은 한국에서 참가하는 경기에서 단축하고, 보스턴대회에서는 주변 경치도 보며 즐기면서 뛰자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실망할거 같아 기존 최고기록인 3시간 14분에서 5분을 단축하여 3시간 9분내에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의 룸메이트는 48세의 부산진구청 공무원이었는데 그는 여러 번 Sub-3 경험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달리기 연습과 더불어 약간의 근력운동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룸메이트의 훈련양은 제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었습니다.
마라톤의 기록단축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부상방지를 위해 보강운동(복근, 하체, 팔 등)이 필수라고 얘기하는 룸메이트는 연예인처럼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대회 전날 아침에는 30분 동안 함께 마지막 훈련을 했습니다. 13시간의 시차 때문인지 몸이 약간 무거웠지만, 자신감은 충만해 있었습니다.
룸메이트는 이번 보스턴마라톤 코스가 언덕과 내리막이 4번이나 반복되는 어려운 코스이며 시차도 있기 때문에 기록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달려야 완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을 했으나, 그 어떤 말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작년의 테러 영향으로 대회 당일 주최측의 철저한 보안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장 상공에서는 헬리콥터가 계속 비행을 하며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건물 옥상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안검색도 굉장히 철저해서 달리는 마라토너 외에는 아무도 행사장에 진입할 수 없었는데, 덕분에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출발!!! 출발지역의 좌우에서 수많은 인파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고 외딴 시골마을을 지날 때는 집 앞에서 혼자 피켓을 들고 서서 응원하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응원 열기에 힘입어 출발지점에서 26키로 지점까지 힘든 줄도 모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뒤부터 언덕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양쪽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발생했고 더운 날씨에 물을 계속 몸에 뿌리며 달렸습니다.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자 이러다가 완주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여 3시간 40분만에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제 팔뚝에 KOREA라고 적힌 글씨를 보고 KOREA를 외치며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앞만 보며 계속 달렸고, FINISH LINE 지점에서는 응원하는 30여만명의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덕분에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힘을 냈습니다.
이번 보스턴마라톤에 와서 보니 의족을 하고 달리는 주자, 같이 참여했던 77세의 김계환 주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남자보다 더 많은 여성주자들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완주 후에 간식을 먹으며 걷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구을회 부장님”을 아느냐며 제 일행에게 물어봐서 만났는데, 그녀는 22세 한국인 유학생으로 마라톤을 하고 싶어 방법을 찾다가 제가 회사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저를 만나고 싶어 무작정 보스턴마라톤 대회장까지 와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마다 물어물어 찾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300회 풀코스완주자와 울트라마라톤 완주자도 있었기에 그 학생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갔을 것입니다. 그 학생의 행동을 보면서 열정과 도전정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완주 후 충분한 훈련을 하지 않고 기록을 단축하려고 했던 제 자신의 욕심과 교만함을 보며 마라톤은 참 정직한 운동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연습한 만큼만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 땀을 흘린 만큼 그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77세 김계환주자의 “一經不事 一智不長”(한가지 일로 오랜 경륜을 쌓지 못하면 커다란 지혜를 길러낼 수 없다) 말씀을 듣고 경험을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감사한 사실은 마라톤을 하고 나서 녹내장 진행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서울아산병원 담당의사도 3년간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있다며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믿음을 되찾았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회사의 “뜀박사랑” 동호회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