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가 보고싶어요.

나한테는 할머니가 엄마 대신이에요.
아기 때부터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할머니까지 돌아가셨어요.
난 이제 정말 고아가 된 것 같아요.

아빠가 계시지만 아빠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만날 화만 내고, 술 마시고, 때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머리맡에 돈만 두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요.
한밤중이나 되어야 오실 거예요.
또 술에 잔뜩 취해서..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할머니가 해주시던 김치부침개도 먹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할머니를 볼 수가 없어요.

할머니가 안 계시니까 일요일엔 밥도 사 먹어야 해요.
옷도 다 더러워졌지만 빨 수가 없어서…
더러운 옷을 다시 입고 학교에 가요.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지
친구들이 나만 옆에 가면 수군거리고 피해요. 너무 창피해요.

혼자인 건 너무 싫어요. 외롭고 쓸쓸해요.
외롭고 쓸쓸하니까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나요.

슬픈 아이

같은 반 친구들 3명과 마음톡톡에 참여한 5학년 우성이는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우성이 아빠는 우성이를 거의 돌보지 않았으며, 용돈을 주는 것으로 양육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빠에게 자주 매를 맞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가 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방치되다시피 한 우성이는 위생 상태마저 매우 불량했습니다. 게다가 엄마처럼 따랐던 할머니마저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셔서 우성이는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성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었으며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아 정서적 교류도 거의 없었지요. 우성이는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할 때가 많았지만 간혹 밝게 웃으며 괜찮은 척, 쾌활한 척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

얼마 전 할머니의 죽음으로 상실을 경험한 우성이는 슬픔, 외로움, 우울 등의 감정을 주로 호소했습니다. 또한 우성이 스스로도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어렵다고 호소했고, 실제로 학급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우성이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데에는 우성이의 위생 상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모르는 우성이는 아빠에게 받은 용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며 환심을 얻으려 해보기도 했는데, 또래들과 어울려 돈을 쓰고 다니다가 불량한 중학생들에게 돈을 빼앗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그램 초반에 우성이는 매우 독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집단원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색모래 작업을 통해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간접적이고 자연스러운 접촉과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아주 유용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색모래와 다른 집단원의 색모래가 섞이는 것을 꺼려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모래를 한데 섞어 하나의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겼지요.

감정카드

우성이가 자신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감정 카드를 활용했습니다. 감정 카드 중에서 자신의 감정과 유사한 표현이 있는 카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했습니다. 또한 우성이에게 감정은 좋거나 나쁜 것이 없으며, 슬픔은 슬픔으로 충분히 느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었습니다.

사전 면담에서 외로움을 호소했던 우성이는 집단원들에게 진정한 친구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진정한 친구를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집단원들은 우성이의 이야기를 아무런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들어주었어요. 우성이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진심을 소중하게 꺼내놓았고, 집단원들은 그 진심을 잘 받아주었습니다.

“죽는다는 건 그런 거잖아요.
나도 죽으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죽는다는 건 무서워요.
죽는다는 건 영영 사라진다는 거잖아요.”

죽음, 슬픔, 우울, 무기력 등에 대한 언어 및 이미지 표현을 주로 했던 우성이는 후반에 이르러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선물, 기쁨, 행복 등에 대한 언어 및 이미지 표현이 많이 늘었습니다.

손 잡은 모습

열 살쯤 된 아이에게 죽음은 아주 공포스럽고 무서운 일입니다. 특히 이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 혹은 애완동물의 죽음을 겪게 된다면 아이의 충격과 두려움은 상당합니다. 아이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한답시고 죽음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는 동화나 신비로운 이야기로 죽음을 치장하지 마세요. 특히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면 어떤 연령이든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아이가 충분히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죽음’이라는 단어, 그로 인한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이들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본 콘텐츠는 마음톡톡 치료사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음톡톡 아이들을 만나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