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사 역량 모델에 따른 역량기반 직업 교육 필요
이제 첫 시간에 던졌던 질문, 수많은 자격증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미술 치료계의 아픈 현실에서 역량 있는 미술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박승숙 교수님의 고민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술가와 미술강사 그리고 미술치료사 각각의 작업이 효과적임을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요? 어느 예술가가, 예술강사가, 어느 예술치료사가 자신의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잘 해내고 있음을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전에 누가 가장 그럴 것 같다고 뽑아 일을 맡겨야 할까요? 여기서부터가 실질적인 문제입니다.
미술치료사의 성과 측정이 가능할까?
미술치료만 해도 성과 측정을 하는 데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가장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며 미시적이기 때문에 그나마 몇 가지 방법론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술가들의 성과입니다.
예술가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로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치유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될까요? 예술이 정신적인 상황에 끼치는 영향이 설문지나 검사 도구로 측정되어 수치로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이긴 한 가요? 그 영향력과 효과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변화로써 증명되는 것이긴 해야 하나요? 이것은 결코 쉽게 답이 내려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저는 아직 이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GS칼텍스의 ‘마음톡톡’ 사업에서 교수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술치료 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사업을 맡겨야 하는데, 전국에서 서로 다른 방향과 질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자격을 검정하여 선발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는 표준 교육을 받은 사람의 스펙만 검토하여 선발했지만, 갈수록 현장에서 단기 치료를 요구하는 데다 효과 검증을 강력히 원하기 때문에 정말로 역량 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치료 일을 맡겨야 합니다.
치료사 역량 강화, 사례 개념화부터
의뢰된 아동 및 청소년이 예술 체험 안에서 스스로 조정하고 흡수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치료사는 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후 그 문제를 치워내기 위해 전략적이며 체계적으로 치료적 개입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례를 개념화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사례 개념화는 단순히 초기 면담 시 주어진 내담자의 정보와 각종 검사 등의 자료를 정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 회기를 진행하면서 내담자의 문제와 내담자의 장점 및 특성을 잘 분석해내어 치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 구체적인 접근법을 세운 뒤 그에 따라 매 회기 개입을 어떤 식으로 할지 그리고 그러한 개입의 하나로서 어떤 미술 활동을 처방할지를 기획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물론 개념화만 하면 안 되고, 그것을 실제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수행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말로 혹은 행동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내담자가 창작 과정에서 체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체험을 극대화하거나 반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법도 터득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의 창작 결과물을 읽고 그것을 상담의 토대로 삼아 작품 해석을 함께 하는 법까지 익히면 그러한 수행이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역량 모델 기반 교육이 필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현재 정신건강 분야에서 ‘역량 운동 (competence movement)’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량이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과 기술 및 태도로서, 이미 기업이나 일반 조직들에서는 훨씬 오래전부터 역량이란 개념을 토대로 직원을 선발하고 관리하고 개발하며, 교육하고 승진시키면서 연봉을 책정해 왔습니다.
미국의 경우 미국의학회(Institute of Medicine)는 2003년에 보건 및 정신건강의 모든 분야들이 임상 실천을 위한 핵심 역량을 규명하여 모델을 개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정신의학계, 심리학계, 부부치료 및 가족치료학계, 상담학계에서는 서둘러 심리치료를 위한 핵심 역량을 4-5가지로 범주화하고 각 범주에 해당되는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역량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현대에는 사업 예산은 점점 더 줄어드는 반면, 단기 치료에 대한 필요와 요청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과에 대한 책임이 전보다 더 심하게 요구되고 있고, 증거를 토대로 업무 효과를 제시할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성과에 초점을 둔 역량 개발이 사회복지 서비스 계에서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수행하여 실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술치료에서도 치료사들을 교육하고 자격을 검정하여 자격증을 주는 모든 단계에서 내용 중심의 전통적인 커리큘럼을 탈피하여 역량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시키고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교육생이 미술치료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을 흥미롭게 듣고 이해했더라도, 현장에 나오면 이론과 실제가 다르고 자신이 아는 것을 행할 수도 없으며, 과연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인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량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탓입니다.
미술치료사의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미술치료계에서는 미국의 경우에도 아직 역량 모델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은 심리치료 역량이므로, 미국의 정신 건강 분야에서 찾아놓은 핵심 역량을 토대로 해서 세부로 들어갔을 때 미술치료사로서의 고유의 역량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정신 건강 분야에서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심리치료사의 핵심 역량은 크게 다음의 4가지입니다.
- 관계 역량(relationship): 효과적인 치료적 관계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
- 개입 계획 역량(intervention planning): 내담자를 평가하고, 사례 개념화를 하며, 개입 방법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
- 개입 실행 역량(intervention implementation): 증거를 기반으로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력
- 윤리적 문화적 민감성 역량(ethical and cultural sensitivity): 문화적 다양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 및 해당 분야에 관련된 윤리적 법적 기준 및 정책에 대한 지식
여기에 역량 범주를 하나 더 추가하기도 하는데, 그 경우 치료 과정을 평가하고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개입 평가 역량’을 추가합니다.
미술치료사의 역량을 위해서는 심리치료를 기반으로 사례 개념화를 하는 방법론을 터득하고, 심리치료 및 상담의 다양한 이론적 모델과 기술들을 익힌 뒤, 그에 더 해 미술을 어떻게 치료적으로 효과적으로 쓸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미술 작업을 내담자에 맞게 효과적으로 처방하기 위해서는 미술 매체와 재료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내담자에게 새로운 체험을 시키고 변화를 꾀해줄 작업을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또한 결과 된 작품을 통해 내담자가 창작 과정에서 느낀 것을 포함하여 결과물에 담긴 모든 의미를 이성적으로 각성하고 인지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작품 해석을 하면서 상담을 하는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매 현장의 특성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양한 사례를 경험하면서 감독을 받아 필요한 기술과 태도를 철저히 배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개인 미술치료를 기반으로 한 교육 뒤에는 미술치료 집단을 운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내용 정보 차원에서 그냥 이해하고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현장에서 자기가 할 수 있도록 익혀서 자기 지식으로 만들고, 그 지식이 실제로 수행될 수 있도록 기술을 쌓는 것이 역량 개발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GS칼텍스 마음톡톡, 국내 최초로 치료사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미술치료사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그에 맞는 올바른 교육 및 훈련 설계가 가능할 것이고, 그에 맞는 역량 평가 방법도 나올 것입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난 이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은 사회의 요구에 맞춘 직업 분야에서의 변화이기 때문에 우리라고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마음톡톡’ 사업에서는 전국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고른 예술치료사들을 선발하여, 본 사업에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고 교육하기 위해 사업 안에서 직무 교육을 따로 제공했습니다. 본 사업을 뛰는 예술치료사들은 이전에 갖춘 배움과 경험을 넘어 본 사업의 특성에 맞는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바쁜 업무 중에도 교육과 훈련을 추가로 받으면서 사업을 완수해 왔습니다.
GS칼텍스가 이런 종류의 지원 사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력자원 개발(HRD)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같이 개발하여 직무능력을 향상시켜가며 사업을 시행해 온 것입니다. 지원 사업의 질을 바꿔놓는 전례 없는 선택이었지만 기업으로서는 참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마음톡톡’ 사업에서 지원을 받아 예술치료를 경험하는 아동 및 청소년들은 국내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치료 프로그램과 치료사들을 만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역량 있는 미술치료사 양성을 위한 노력 필요
저는 현재 미술치료사의 역량을 분석하여 역량 모델을 만들고 그 역량을 미술치료 학도와 미술치료사에게서 어떻게 평가할지 진단 평가 방법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역량 모델이 나오면 그 역량을 기반으로 직업 교육 및 훈련 방법을 찾아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개발해야 할 것이며, 기존의 교육과정들을 평가해서 개선할 방도를 자문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GS칼텍스의 ‘마음톡톡’ 사업 덕분에 예술치료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의 사회복지서비스의 품질을 바꾸기 위해 추후 교수진들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너무 많은 미술치료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역량 있는 미술치료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