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치료사가 바로 서려면
예술가, 예술교육가, 예술치료사가 얼마나 다른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오셨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역할은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걸까요? 이제 각각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술가 > 예술교육가 > 예술치료사로 전문화
이제 저는 예술가, 예술교육가, 예술치료사들의 관계는 가장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영향에서 가장 미시적이고 집중된 전문적 영향으로 분화되는 관계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치유와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예술의 사회적 영향과 효과성을 논할 때 우리는 빛의 스펙트럼에서 서로 다른 색깔로 존재하면서도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색상으로 단계별로 넘어가는 중에 빨주노초파남보라고 불리는 가시광선처럼 예술가, 예술교육가, 예술치료사들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로선 아직 개념이 정확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소통과 치유에 뛰어든 예술가, 예술교육가, 예술치료사들이 서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 당한 듯 종종 싸울 때가 있습니다. 셋은 예술의 영향력이라는 빛의 스펙트럼 위에 펼쳐진 조금씩 다른 색들입니다. 각각의 색의 주파수 범위를 몇 헤르츠에서 몇 헤르츠로 잡아야 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중첩되듯 여겨지는 애매한 경계선에서는 서로 만나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색은 빨간색이고 파란색은 파란색입니다.
치료사는 치료가 필요한 내담자 선별부터 시작
치유가 아닌 치료를 하는 미술치료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내담자들을 선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어떤 세팅에서 일을 하든 미술치료사는 의뢰 받은 내담자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의뢰된 상황, 의뢰될 때 주어진 정보, 치료사에게 전달된 보호자나 내담자 자신이 바라는 변화의 방향을 꼼꼼히 살피고, 첫 면담과 초기 회기들에서 내담자의 다양한 모습과 문제가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여러 상황을 펼쳐주어 내담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파악해야 합니다.
특별히 개입해야 하는 문제가 없는 내담자라면 치료사는 예술 활동의 장만 펼쳐주고 내담자가 창작 활동 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흡수하고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치유로서의 예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내담자에게 예술 활동에의 동기를 부여하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체험할 수 있게 유도하고 이끌면서 내담자가 알아서 그 안에서 쉬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새로운 만족감과 체험을 하게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됩니다. 이 일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미술강사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미술치료사에게 찾아오거나 의뢰된 사람을 미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돌릴 수 있다면, 굳이 미술치료사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치료사에게 그런 치유적 예술 체험의 도모를 맡으라고 한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미술치료사 스스로 ‘치료’라고 부르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거절하고 돌려보내는 일도 미술치료사가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상적인 역할 분담 필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셋이 연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계획된 변화의 방향대로 예술치료를 통해 치료가 된 사람은 그 자신의 내적 힘에 의지하여 더 넓은 경험의 장으로 나가야 하고, 그때 예술교육이 더 넓고 폭넓은 예술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제한 없이 제공되는 예술가들의 예술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위안도 받으며 중요한 체험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교육에서 예술강사가 예술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중에 관계적으로 얽혀들게 되고 심리•정서적으로 다루기 힘든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강사는 그 사람을 예술치료로 넘기는 것이 적절합니다. 강사들은 심리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법이나 문제를 분석하여 변화를 꾀할 방향을 정하여 계획적으로 유도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넘는 대상이 됩니다.
거시에서 미시로, 보편적 접근에서 전문적 개입으로, 예술가와 예술교육가, 그리고 예술치료사들의 작업은 서로 연계하여 이루어질 수 있고, 앞으로는 그렇게 구분되면서 연계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