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의 해법, 요금인상과 시장화에 있다!
60년대에 무제한 송전을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는 전력부족 우려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한송전, 순환단전 등은 다시 오지 않을 먼 과거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재작년 9•15 정전사태 이후 전력위기는 여름과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례행사가 되었고 국가 전체가 수시로 단전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올 여름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 보입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원전 가동 중단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모든 발전설비들은 그 동안 비상사태에 대처해 오느라 상당히 과로한 상태입니다. 급증한 채무에 내몰린 한국전력의 재무적 역량이 송전설비를 제대로 손보는 데 충분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러한 때에 전력체계에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건설 중인 발전소 다수가 완공될 내년까지는 전력 공급 또한 더 늘어날 길이 없습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전력수요를 공급 가능 범위 이내로 신속하게 통제해야 광역정전의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의 전력공급 사정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수요관리보다 수요감축이 시급!
전력소비량이 발전소 건설을 앞질러 증가할 때 공급능력을 초과한 전력수요는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요?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발전을 계속한다면 발전기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모든 발전소는 과부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자동차단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초과 전력수요를 방치하면 결국 어느 발전소의 차단장치가 작동하게 되고 이 발전소의 발전 중단은 다른 발전소가 부담할 초과수요를 그만큼 더 늘리므로 차단 사태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광역정전의 대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광역정전을 피하려면 발전소 연쇄 차단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때그때 전력소비를 공급능력 이내로 통제해야 합니다.
전력소비가 공급능력을 웃돌 때 소비를 통제하는 보편적 방법이 수요관리입니다. 대형 산업체를 종용하여 전력이 부족한 시간 동안 조업을 중단시키고 그에 따른 피해액은 현금으로 보상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수요관리는 기본적으로는 발전설비가 충분하지만 돌발적으로 잠시 수요가 폭증할 때의 대책입니다. 일시적 수요폭증에 대한 미봉책일 뿐 구조화한 초과수요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하여 요금인상은 원천적으로 전력소비를 공급능력 이하로 통제합니다. 인상된 요금이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스스로 전력소비를 줄이기 때문입니다. 공급능력을 초과하는 전력소비가 장기화하여 수요 자체를 근본적으로 줄여야 할 때에는 수요관리의 미봉책보다는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수요감축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수요감축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
현 전력난은 전력소비 증가를 과소 예측하여 발전계획을 짰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력소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한 것은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낮게 유지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요,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이 장기간 지속되자 전기를 사용하는 냉•난방기기 사용이 급증하였고 디젤 크레인보다 전동 크레인을 사용하게 되는 등 가스와 디젤유를 전기로 바꾸어 사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력소비 증가를 감당할 발전설비는 내년이나 되어야 완공됩니다. 재작년 9•15 순환단전 이후부터 발전설비가 완공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전력사정은 겨울과 여름마다 초과수요를 면할 수 없는 구조로 정착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력난에 대해 정부는 전력요금인상을 주저하고 전통적 수요관리의 미봉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대처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전기가 너무 싸서 발생한 전력초과수요는 그대로 남은 채 수요관리 보상액만 몇 천억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충분한 전기요금 인상으로 대처하였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전기요금 인상은 인기 없는 정책입니다. 요금 인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낮은 요금보다는 수요예측 실패를 탓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해 놓고 수요예측에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전력수급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가스와 디젤유 쓰던 사람들까지 전기를 쓰도록 만들어 놓고 그 결과 늘어난 전력 수요까지 충족하도록 발전설비를 확충한다면 그 정책은 과연 올바른 정책일까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전기요금 인상의 효과
요금이 오르면 전기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지만 이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행동이 전력 소비량을 감축시킬 것입니다. 낮은 요금이 전기 사용을 부추겼듯이 요금인상은 전력소비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전력소비를 스스로 줄임으로써 소비자는 요금인상의 부담을 덜고 이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전력소비 감축에 기여하게 됩니다.
정부는 전력요금인상과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시행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요금인상을 미적거리다가 실기하면 반드시 지금의 전력난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전기위원회를 독립시켜 요금을 책정하도록 체제를 바꾸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공공요금을 물가안정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총괄원가보상의 원칙만이라도 지키자는 것입니다.
전력시장 개방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여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전기가 모자랄 때마다 요금이 오르고, 남아돌 때마다 내린다면 전력난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불행히도 경쟁적 전력시장의 구축을 목표로 시작한 전력산업구조개편은 10년째 표류 중입니다. 만약 2004년의 배전분할 중단 조치만 없었더라면 2009년부터 전기요금은 수요공급에 따라서 결정되었을 것이고 2012년의 9•15 단전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