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감산합의의 의미와 우리의 대응방안

8년만의 OPEC 감산결정..그 의미는?

석유 감산 규모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던 국제 원유시장이 OPEC을 중심으로 타협 무드로 전환되고 있다. OPEC이 최근 비공식 회의를 열고 원유 감산을 전제로 생산량 한도를 재설정한다는 입장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OPEC은 최근 알제리에서 열린 비공개회의에서 오는 11월 개최되는 정기 총회에서 OPEC의 하루 원유 생산한도를 3,250만~3,300만 배럴로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8월 OPEC의 원유 생산은 하루 평균 3324만 배럴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최대 74만 배럴의 감산이 가능하다. 이번 합의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저유가 기조가 상당 기간 유지 중인 상황에서 8년 만에 이뤄진 감산 결정이기 때문이다.

‘희생’ 통한 유가 지지 포기했던 OPEC

OPEC의 정의

잘 알려진 것처럼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즉 석유수출국기구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을 주축으로 결성된 카르텔 집단이다. OPEC에서 결정하는 원유 생산량은 전 세계 원유 수요와 공급의 균형추가 되고 가격이 결정되는 요인이 된다. 수요에 비해 타이트한 생산량을 유지하면 유가는 뛰어오르고 그 반대의 경우 떨어지게 되는데 최근의 상황은 후자에 해당한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셰일 에너지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원유시장 패권을 넘겨줄 위기에 처한 사우디 등 OPEC 회원국들은 생산량을 통한 가격조정 기능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시장 주도권 확보를 모색해왔다. 유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비OPEC 회원국들은 생산량을 오히려 늘렸고 OPEC은 유가하락 시기에 보여온 ‘희생적인 감산 조치’를 포기한 것이다. OPEC이 원유 생산량을 줄이면 유가가 회복된다는 점에서 ‘OPEC의 희생’은 그동안 유가를 지지하는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었는데 최근 열린 여러 차례의 총회에서 생산량을 동결하며 ‘희생’보다 ‘경쟁’을 통한 치킨게임으로 전략을 선회한 결과다.

생산량 조정 결과 어디로 튈까?

OPEC이 생산량 조정을 통한 감산에 어렵게 합의한 데는 현 유가 수준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유가 하락의 배경

원유 생산기술의 진보로 북미 지역 퇴적암층에 산재되어 있는 비전통 자원인 셰일원유 채굴이 가능해지면서 시장 주도권이 위협받자 OPEC은 ‘유가하락을 통한 경쟁자의 시장 퇴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육상 광구 등 전통 유전보다 셰일원유의 생산단가가 높다는 점에 착안해 유가가 낮아지면 채산성을 확보하지 못한 비전통 자원기업의 생산 중단 또는 도산을 유도할 수 있고 결국 원유시장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전략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OPEC 회원국들도 내상(內傷)을 입어 결국 생산량 감축에 합의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감산까지 이르는 과정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11월 정기총회에서는 감산과 관련한 개별 국가의 생산 한도가 논의되는데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각 산유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OPEC 주요 회원국인 이라크는 자신들의 산유량이 과소평가돼 부당하게 많은 감산 요구를 받을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산유국들은 유가하락에 따른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어 전반적인 감산 움직임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또한 감산 규모가 크지 않아 유가 견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가가 상승할 경우 비전통 자원으로 미국 등이 주도하는 셰일원유 생산이 회복되면서 다시 유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OPEC의 원유 감산결정이 향후 국제시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 당장은 확신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저유가가 반드시 ‘호재’ 되지는 않아

어찌 됐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가가 낮으면 소비자 유류비 부담이 줄고 생산 원료비절감이 가능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2년여에 걸쳐 전 세계 원유 공급과잉과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경험한 장면들은 저유가가 반드시 경제에 청신호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효자산업인 조선과 해운산업이 도산하거나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저유가 장기화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 세계 경기가 얼어붙고 공장가동이 줄어들면서 에너지소비가 감소했고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조선과 해운 수주 일감도 동반 추락하는 연쇄적인 현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고 관련 산업은 황폐화되고 있다.

저유가 장기화로 국가재정에 타격을 입고 있는 주요 산유국들의 오일머니가 말라가면서 국내기업들이 중동 등에서 플랜트나 건설, 자원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 뛰어들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근의 저유가 장기화는 우리 경제에 ‘호재’보다는 ‘악재’가 됐다는 평가에 더 큰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원유 가격 하락에 따른 변동성의 증가가 주는 시사점 콘텐츠 보러가기

합리적 석유가격 조정 시스템 마련돼야

그렇다고 2012년의 경우처럼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불대를 넘나드는 고유가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에너지자원 빈국이고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OPEC의 생산량 조정합의가 국제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유가가 상승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원유수급이나 가격리스크를 최소화시켜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저유가는 좋고 고유가는 나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유가의 변동성이 국가경제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즉 유가등락이 우리 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산업구조와 소비패턴 등을 감안할 때 적정한 유가는 어느 수준인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유가 변동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세제개편이나 세율 탄력성부여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석유가격 조정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industrial writer GScaltex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