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유 가격은 급락하여 2008~2009년 금융위기 이래 유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거의 반토막이 나서 2015년 1월 초 배럴 당 50달러 선이 무너졌습니다. 유가 급락으로 인하여 많은 원유 생산업체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규모가 작고 부채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타격이 컸으며, 대규모 해양 및 중질유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러 핵심 에너지서비스 회사의 존속이 위태로워졌으며, 원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국가의 예산에는 구멍이 뚫렸습니다.
현재의 저유가 기조가 얼마나 지속될지, 이로 인하여 원유 생산업체가 직면하게 된 재무적 “지속가능성 테스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15년 1월 초 배럴 당 50달러 기준)
*참고
석유회수증진(EOR, enhanced oil recovery) : 1차회수, 때로는 2차회수 후에도 지하에 남아 있는 석유를 회수하기 위한 기술.
그러나 중단기적으로 유가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셰일 원유는 세계 원유 공급에 지속적으로 상승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셰일 원유로 인해 미국의 원유 수입량이 급감하면서 원유 생산업체는 다른 활로를 찾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아시아 시장 점유율을 사이에 둔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시아에는 지속적인 가격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의 원유 수요 증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유가 하락의 주원인)는 것인데 이에 따라 유가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에 비해 시장 장악력을 잃기는 했으나 여전히 큰 힘을 가진 오펙(OPEC)이 이번만큼은 의도적으로 공급을 줄임으로써 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펙의 이러한 결단이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의 회원국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나 오펙의 현 잉여생산능력(spare production capacity)의 72퍼센트를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입김에 당할 수는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을 믿는 듯 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겪으면서 한계 생산업체와 고비용 사업이 자연스레 정리되어 장기적으로는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가격책정 환경이 구축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따라서 당분간 유가는 비교적 낮으나 변동성이 클 것입니다. 이것이 원유 및 가스 산업과 기업 및 정부에 포괄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부문별 영향
전통적으로 유가 하락은 생산업체에는 재무 위기를 초래하지만 세계 경제에는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소비자의 지출 증가가 생산업체의 투자 감소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상황이 좀 더 미묘합니다.
현재의 유가 하락은 공급 증가 때문이기도 하나 수요 감소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수요가 불안정합니다. 주요국의 경기 침체가 심각하여 저유가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무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미 달러 강세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유가는 50퍼센트 이상 하락했을지 모르나 미국 외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원유 가격 하락폭은 그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습니다.
게다가 많은 정부에서 이미 금리를 낮추었기 때문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자율을 더 낮춰서 에너지 수요를 진작할 여력이 별로 없습니다. 한편, 오늘날의 원유 사업은 대체로 규모가 크고 국제적이기 때문에 사업이 중단될 경우 생산국에만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업에 꼭 필요한 재화, 서비스, 전문성을 제공한 국가에까지 영향이 미칩니다. 현재 기업이 놓여 있는 상황도 이와 같으며, 유가 변동으로 인해 받는 타격의 정도는 다음의 세 부문별로 다릅니다.
1) 생산자(원유 및 가스 생산업체, 국유업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세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원유에서 이윤을 취하는 정부 등)
2) 에너지서비스회사(서비스, 장비, 공학, 건설업체와 운송 및 현장지원 서비스 업체 등)
3) 소비 및 처리 산업(정유회사, 항공사, 해운업체, 제조업체, 중공업체 등)
업스트림 회사
생산자가 원유나 원유 관련 자산으로 얻는 수입은 극명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현 기조와 반대로 유가상승 위험에 대비하여 헷징(hedging)한 생산자는 더 큰 하락세에 직면했습니다. 한편, 기업의 규모가 작고, 탐사 위주의 기업일수록 자금조달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신규 투자와 관련해서 기업이 현 사업에 적용했던 사업성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므로 기존에 구상했던 많은 사업의 실행 가능성 역시 불투명합니다. 외부 요인의 측면에서 자산, 서비스, 인력에 대한 시장 수요가 감소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많은 경쟁기업과 공급업체가 재무상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파산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민자 기업, 소자본 업체, 사모 투자를 받은 신생업체 등 부채 의존도가 높은 생산업체는 유동성 위기와 재무 위기에 시달릴 것입니다.
밸류체인의 회사
많은 에너지서비스회사는 비용 압박과 운영업체의 계약 재협상 요구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일부 대규모 고비용 사업의 재편 요구에도 직면했습니다.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생산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자 계획을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합니다. 회사의 자산 포트폴리오와 제공 서비스가 현 시장 수요에 적합한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명확하게 보증되지 않는 이상 고가의 고객맞춤형 첨단 기술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당분간 저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침체기 속에서도 전략적 인수합병(M&A) 활동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에너지서비스 부문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으나 비현실적인 가치평가(valuation) 때문에 투자를 단념했던 사모펀드회사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다운스트림 회사
소비 및 처리 산업에 있어 유가 하락의 일차적 효과는 투입비 감소로 나타납니다. 감소 정도는 환율 및 유가에 대한 기업의 의존도에 좌우됩니다. 원유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운송 연료비는 이미 급감했습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동력비의 변화는 지역과 시장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많은 시장에서 휘발유 가격은 세금으로 인해 너무 부풀려져 있으므로 소비자에게 미치는 유가 하락의 효과는 현저히 약화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가 하락의 효과는 상당합니다. 유가 하락으로 촉발된 업체 간 경쟁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기도 합니다. 유가 하락이 수요에 끼치는 영향은 각양각색이며 부문별로 다릅니다.
탐사와 생산 부문을 모두 보유한 업체(Centrica 등), 업스트림과 서비스 부문을 모두 보유한 업체(SapuraKencana Petroleum, Petrofac 등) 등 하이브리드 기업(hybrid company)에 미치는 유가 하락의 영향은 복잡합니다. 즉, 각 기업이 어떤 부문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복합적인 영향이 중첩되어 나타납니다. 최악의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배가되어 단일 부문 기업보다 하이브리드 기업이 훨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유와 석유화학 부서를 보유한 기업 같은 경우, 업스트림 부문에서 받은 타격을 다운스트림 부서에서 얻은 이득으로 상쇄할 수 있습니다.
저유가로 인하여 세 부문의 모든 회사는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체계적 대응, 경영진의 관심,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는 물론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필수적입니다. 현재의 독특한 시장 환경에서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함에 따라 향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