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의 원료는 원유(CRUDE OIL)이다. 탄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체인 원유의 채굴 당시 모양새는 흑갈색의 끈적한 액체를 띄고 있다. 그런데 원유에서 유래돼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석유제품은 때로는 맑은 투명체이고 어떤 제품은 노란색을 띠고 있다. 심지어 초록색이거나 빨간색 석유도 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시험기를 통해 색도를 구분하기도 한다. 검은색 원유를 ‘탈색(脫色)’해 갖가지 색을 입히고 투광도로 색도를 식별하는가 하면 특정 시약이 닿으면 색이 바뀌는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불광동 휘발유’, 이유 있는 별칭
학창 시절 실험용 플라스크로 액체 물질의 끓는 점을 실험했던 기억이 있다. 원유(CRUDE OIL)가 석유제품으로 변신하는 기본 원리가 그렇다. 원유를 투입하면 비점, 즉 끓는 점이 다른 석유제품들이 기체 형태로 추출되는데 냉각 과정을 거쳐 액체 형태로 선별하는 것이 정제공정의 핵심이다. 끓는 점 차이에서 비롯된 어떤 석유제품은 개그 소재가 되기도 한다. 성격 급한 다혈질 인사의 소싯적 별명은 ‘불광동 휘발유’이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액화석유가스인 LPG가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휘발유가 그 뒤를 잇는다. 점화나 휘발성이 높은 석유제품이 먼저 뛰쳐나오니 성질 급한 불광동 휘발유는 나름 이유 있는 별칭이다. 석유는 제조, 유통 과정에서 색이 변한다. 흑갈색 원유가 정제공장에 투입되면 무색 투명체 또는 황갈색 경질 석유로 바뀐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찌꺼기 연료인 일명 잔사유(殘渣油)는 끈적한 검은 액체로 남는다.
휘발유와 일란성 쌍둥이
셀프 주유 시스템이 대중화되고 있다. 주유 모터가 작동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주유기 본체에 투명관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일반적이다. 생산 당시 휘발유는 원래 무색인데 주유기 투명관에서 보여지는 색상은 다르다. 노란색을 띄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라는 법을 통해 각각의 석유 품질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보통휘발유 색상을 ‘노란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급휘발유 색상은 또 다르다. 초록색이다. 보통휘발유와 고급휘발유는 옥탄가 차이로 구분된다. 안티 노킹 성능을 표시하는 옥탄가가 91∼94이면 보통휘발유, 그 이상이면 고급휘발유로 구분된다. 같은 화학식을 가진 휘발유이지만 옥탄가 성능 차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각자 다른 색을 입혔으니 일란성 쌍둥이 구분하려는 다른 옷을 입힌 모습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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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광성으로 색도 차이 가려내기도
화물차나 SUV 같은 자동차나 선박 연료로 사용되는 경유(Diesel) 색상도 이원화되어 있다. 자동차용은 무색이다. 다만 선박에 사용되는 경유는 빨간색을 유지해야 한다. 똑같은 경유이지만 자동차에 쓰이는지 또는 선박용으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황 함량이나 세탄가 같은 일부 품질 기준이 다르다. 자동차용 경유에는 폐식용유나 팜, 대두 같은 식물 자원에서 생산된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디젤도 의무 혼합된다. 용도가 서로 다른 경유를 구분하기 위해 색상이 사용되는 셈이다. 주로 난방유로 사용되는 등유는 자동차용 경유와 마찬가지로 무색이다. 다만 점도(粘度)를 기준으로 ‘등유’를 구분할 수 있도록 ‘세이볼트 색도(Saybolt 色度)‘ 기준이 있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시험기에서 빛이 통과하는 투광성으로 색도 차이를 가려낼 수 있다.
석유 색상은 육안 식별 위한 태그
당초에는 무색 투명체였던 경질 석유제품은 나름의 사연으로 고유 ‘색(色)’을 입고 있다. 휘발유에는 노랗거나 초록의 색이 입혀졌다. 같은 무색이지만 경유와 달리 등유는 시험기를 통해 세이볼트 색도로 구분할 수 있게 나름의 차별성을 부여하고 있다. 석유제품 마다 고유 색을 지정해 입히는 이유 중 하나는 판매자나 소비자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석유제품은 무색 투명체인데다 액체 벌크제품이다. 자동차나 기계 성격에 따라 사용되는 석유제품도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 경유차에 휘발유를 주유하거나 그 반대인 혼유가 발생하면 시동이 멈추고 엔진이 망가지는 고장이 발생한다. 같은 모양이더라도 포장지로 구분해 식별할 수 있는 일반 공산품과 달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종의 태그(tag)가 석유제품의 색인 셈이다.
석유 몸 값의 표식 될 수도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석유제품 사이의 가격 차이는 거의 없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3일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한 휘발유와 등유, 경유의 국제 거래 가격은 1리터당 각각 564.73원과 602.43원, 609.53원에 형성되어 있다. 국제 시장에서는 휘발유 보다 등유나 경유가 더 비싸게 거래되는데 유류세가 더해지면서 내수 시장에서는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 소비 특성이나 계층, 수요량 등에 따라 유류세가 책정되면서 휘발유가 가장 비싸고 경유, 등유 순으로 소비자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석유의 색은 각기 다른 세금 부과 수준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넷째 주 유류세 부과액은 고급휘발유가 1리터에 774.99원으로 가장 높고 보통휘발유는 762.59원, 자동차용 경유가 562.83원, 실내등유는 가장 낮은 148.01원으로 집계됐다. 세금이 얼마나 부과되느냐에 따라 각각의 석유 몸값이 달라지니 석유의 색이 곧 몸값을 나타내는 표식이 될 수도 있다.
경유와 구별되는 등유 식별제도 ‘색’과 연관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가짜휘발유 원료가 되는 용제는 무색 투명하다. 가정에서도 희석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시너가 바로 용제이다. 석유제품과 달리 용제는 유류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휘발유에 색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용제로 제조된 탈세 가짜휘발유를 색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난방유인 등유는 윤활성과 세탄가가 낮아 차량 고장을 유발하지만 디젤 엔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금은 경유보다 낮다. 등유가 혼합된 가짜 경유가 유통되거나 일부 버스나 화물차들이 등유를 수송 연료로 사용해 적발되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세금 차이 때문이다. 등유와 경유는 모두 무색으로 그 차이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다. 그래서 등유에 고유 식별제를 첨가해 경유에 불법 혼합되는지 여부를 가려내고 있는데 식별제 역시 색과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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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중유는 원래 색 그대로
등유에는 ‘Unimark 1494 DB’라는 이름의 식별제가 투입된다. 이 식별제를 투입하는 이유는 경유와 혼합됐을 때 쉽게 가려내기 위해서이다. Unimark 1494 DB를 식별할 수 있는 검사 시약을 투입하면 색상이 변한다. 등유가 불법 혼합된 경유에 검사 시약을 투입하면 무색이던 경유가 보라색으로 바뀐다. 등유나 경유 모두 무색으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시약을 첨가하면 색상이 바뀌니 ‘Unimark 1494 DB’라는 첨가제는 탈세 의도로 제조된 가짜경유를 식별할 수 있는 일종의 ‘열쇠(key)’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식별제의 치명적인 단점이 확인된다. 활성탄이나 백토 등으로 흡착시켜 쉽게 제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식별제를 없앤 등유를 경유에 불법 혼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해 11월 이후 생산되는 등유에 제거가 어려운 새로운 식별제를 투입하고 있다. 이 조치로 가짜경유 색출이 어렵도록 식별제의 ‘색(色)’을 지우는 불법은 어렵게 됐다. 원유 증류 마지막 단계에 추출되는 일반적으로 중유로 불리우는 ‘벙커-C(Bunker-C Oil)’는 끈적한 검정색을 띈다. 석유사업법에는 중유에 대한 색상 규정이 없다. 변색시키기 어려운 검정색을 띄고 있기도 하지만 값이 싼 탓에 휘발유나 등유 처럼 굳이 색으로 식별해 불법 전용을 감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석유제품에게 색은 이렇게 이름이 되고 나름의 몸값이 되며 차등화된 세금을 구분하고 탈세를 막는 기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