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석유, 그래도 수요는 늘어난다’ IEA·OPEC의 같은 생각

석유 시대 종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일단 석유는 유한(有限)하다. 과거 40여 년 전부터 대두되어 온 오일 피크(Oil Peak) 이론이 그 증거이다. 석유 매장량은 언젠가 정점에 달해 감소세로 전환된다는 오일 피크 이론은 자원의 유한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새로운 유전이 개발되고 셰일 오일 같은 비전통 자원 채굴 기술이 진화하면서 지구의 석유 확인 매장량은 여전히 증가 중이다. 석유 시대 종말의 원인은 석유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외면받는 데서 찾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과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처럼 석유에서 유래하는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태양과 바람 등 자연에너지 활용도를 높이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석유 기반 내연 기관 자동차의 종말을 예고하거나 선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전히 석유는 넘쳐나는데, 석유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석유 시대 종말을 예측하는 더 확실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석유 수출국과 석유 소비국을 대표하는 두 곳의 국제기구는 여전히 ‘석유 중심의 지구’를 전망하고 있으니 그 이유를 들여다본다.

산유국·소비국 기구 모두 석유 수요 증가 전망

한쪽은 산유국 카르텔 조직이고 다른 한쪽은 석유 카르텔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석유 소비국 기구이니 성격이 정반대이다. 석유 수출국 기구로 불리는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이라는 단체가 있다. 원유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그로 인해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때마다 그 배경으로 소개되는 OPEC이 바로 그 조직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인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원유 공급 감축 같은 산유국 횡포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주요 석유 소비국들이 뭉친 조직이다. OPEC 카르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국들이 구축한 일종의 카운터 파트너(counter partner)가 IEA인 셈이다. 석유 소비를 억제하는 한편 석유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해 석유자원의 무기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IEA 주요 역할 중 하나다. 그런데 이들 두 기관 모두 “적어도 2040년까지는 석유가 여전히 주종에너지 역할을 할 것이며 소비 역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40년까지 세계 석유 수요 연평균 0.6%씩 증가

IEA는 세계에너지전망(World Energy Outlook), OPEC은 세계석유전망(World Oil Outlook)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향후 20~25년 동안의 세계 에너지 산업을 전망하는 성격의 보고서인데 지난 해 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가 2040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IEA는 2017년 이후 2040년까지의 세계 석유 수요가 연평균 0.6%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IEA 전망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는 2017년 기준 하루 9660만 배럴이던 것이 2040년에는 1억1100만 배럴까지 늘어나게 된다. OPEC 역시 같은 기간 동안의 세계 석유 수요가 연평균 0.6%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17년 하루 9720만 배럴이던 석유 수요가 2025년에는 1억600만 배럴까지 늘어나고 2040년에 1억1170만 배럴에 도달할 것으로 OPEC은 분석했다.

석유 소비국 기구나 수출국 기구 모두 향후 20년 동안 바이오에너지를 포함한 석유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석유를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재생에너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석유 종말은 요원하며 심지어 2040년까지 소비 증가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 이들 두 기구의 공통된 전망이다.
부문별 석유수요 장기전망

경제 선진국 OECD 석유 수요는 감소

소비 효율을 높이고 다양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려는 세계 공동의 노력은 대기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럼에도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배경은 비OECD 국가에서 비롯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전 세계 36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멕시코, 칠레, 터키 같은 신흥 국가들도 OECD 회원으로 가입돼 있지만 대부분은 경제 선진국 중심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그렇고 대한민국도 OECD에 가입된 경제 선진국 중 하나이다. 일종의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들은 인구가 정체돼 있고 경제 성장률도 한계에 다다른 데다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는 영향으로 갈수록 석유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IEA와 OPEC 모두 OECD의 석유 수요가 오는 2040년까지 연평균 0.8%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역별 석유수요 장기 전망
*IEA는 벙커유/바이오 등은 지역별로 분류하지 않고 별도 분류, OPEC은 벙커유를 각 지역 수요에 분산

 

비OECD 국가, 여전히 석유 배고프다

그 반대편에 서있는 비OECD 국가들은 상황이 다르다. 비OECD 국가들의 석유 수요는 확연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EA와 OPEC은 오는 2040년까지 비OECD 석유 수요가 연평균 1.3~1.7%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OPEC은 비OECD 국가 석유 수요가 2017년 하루 평균 4440만 배럴이던 것이 2040년에는 6660만 배럴로 1.5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중심에는 21세기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중국과 인도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관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203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중국이 1위, 인도가 2위를 차지하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3위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했다. 각각 13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 인구 자원을 기반으로 빠른 경제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산업과 수송, 발전 분야에서 여전히 막대한 석유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들 국가의 인구는 지금도 증가 중이고 중산층은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 성장률이 높은 만큼 이를 견인하기 위한 석유 수요 확대는 불가피한 셈이다.

전기차 3억대의 석유 대체 효과 2%대 그쳐

전기자동차가 석유 연료 기반의 내연기관자동차를 잠식하고 그 한편에서는 자동차 연비 효율 개선이 이뤄지는 ‘수송 혁명’에도 불구하고 2040년 수송 분야 석유 소비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2320만 여대에 달한다. 같은 시점 우리나라 인구인 5182만 여명 중 44.8%가 자동차를 보유 중인 것이다. 그런데 비OECD 국가는 인구 기준 차량 보유 비율이 20% 미만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 인도, 아프리카 신흥국들의 자동차 소유 선호가 커지고 이들 국가에서 향후 수억명의 인구가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수송용 석유 수요 증가를 견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이유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이 크게 확대되겠지만 석유 소비 대체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IEA와 OPEC에 따르면 2040년 전 세계 전기차 보급 댓수는 약 3억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약 20억대의 차량 중 15% 정도를 점유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한 석유 수요 대체 효과는 많아야 하루 330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40년의 하루 석유 소비량이 1억11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IEA의 분석에 비춰보면 전기차 3억대가 대체할 수 있는 석유 수요는 고작 2.6%에 그칠 뿐이다.

IEA 부문별 석유수요 장기 전망

재생에너지 적용, 대부분 발전 분야에 그쳐

태양과 바람, 물 등 자연에서 무한하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이 기반인 재생에너지 확대 붐은 전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활용도가 높아지는데 맞춰 석유 시대 종말이 연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IEA와 OPEC 전망에서는 재생에너지 한계가 오히려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재생에너지 활용 분야는 대부분 발전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발전용 석유 수요는 하루 500만 배럴에 그쳐 전체 석유 소비량 중 5% 수준에 불과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석유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이다. 태양과 바람을 활용한 전기 생산이 확대되면서 줄어드는 석유 수요는 많아야 하루 평균 220만 배럴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수송, 석유화학, 산업, 주거·농업 등 다양한 석유 쓰임새 중 2040년까지 석유 소비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발전 분야가 거의 유일한데 그 폭은 극히 미미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 석유가 더욱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석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오류”라고 해석했다.

OPEC 부문별 석유수요 증감 전망

석유 비중 여전하다면 자원 확보 적극 나서야

2040년 전체 1차 에너지원 중 석유 비중은 현재의 32% 수준에서 28%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석유에너지가 비중면에서 여전히 1위를 차지하며 주종 에너지원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은 IEA와 OPEC의 공통된 의견이다. 재생에너지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떠오르는 것은 거스를 수 없지만 석유를 대체하는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향후 20여 년 이후에도 여전히 석유가 주종 에너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급 안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 자원개발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는 “석유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일관된 투자 전략을 바탕으로 IEA, OPEC 등 세계적 전망 기관이 우려하는 석유 확보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환상에만 사로 잡혀 석유 확보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과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우주가 공짜로 선사하는 태양과 바람, 물 같은 자연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은 전 지구적 과제이다. 그런데 자연에너지에 의존할 수 있는 영역이 상당 기간 동안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석유 소비국 기구와 석유 수출국 기구 모두가 전달하고 있으니 지혜롭게 자원을 확보하고 소비하는 포트폴리오를 수립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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