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변동성이 높아지는 데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가 인상 요인으로는 세계 원유 수출 시장을 주도하는 이란, 베네수엘라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 산유국을 겨냥하는 원유 수출 제한 조치 움직임이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생산성 저하 가능성은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져 유가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유로 유가가 오르거나 내릴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고 이란, 베네수엘라와는 정치, 이념적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출발하는 갈등은 국제 원유 시장까지 들썩이게 만들고 있어 그 배경을 들여다봤다.
중국과의 무역전쟁, 세계 경제 위축으로 연결
4월 첫째 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소폭 내렸다. 1배럴에 65.5달러를 기록하며 그 전주보다 0.1달러 떨어지는 데 그쳤는데 그 배경에 대한 해석이 눈길을 끈다. 유가 동향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무역 분쟁 우려가 하락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 등 주요 거래 당사국들을 대상으로 관세 폭탄을 예고하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가 대상인데 이에 대해 특히 중국이 반발하면서 미국산 대두와 유화 제품, 돼지고기 등에 고율의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국제유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역 조건을 둘러싼 최강대국 간 대결은 전 세계 거래량을 위축시켜 무역 조건을 둘러싼 최강대국 간 대결은 전 세계 거래량을 위축시켜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지고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서 유가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유가 전망치 상향 조정, 이란 리스크 영향
최근 세계 에너지 관련 주요 기관들은 올해 국제유가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석유정보망에 따르면 에너지 관련 총 31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3월 설문 결과, 올해 브렌트유 평균 가격은 2월 전망보다 배럴당 0.97달러 오른 63.97달러로 전망됐다. WTI 가격 역시 2월 전망에서는 1배럴에 58.88달러였는데 3월에는 1달러 이상 오른 59.85달러로 조정했다.
주요 원유의 올해 가격 전망이 한 달 사이 배럴당 1달러 수준 인상된 가장 큰 배경에는 미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 정부가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을 거부하는 데다 내전 상태인 시리아의 정부군을 지원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미국이 경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지목되고 있다.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이란에 대한 서방측의 경제 제재는 원유 수출 제한이 핵심인데 이 경우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국제유가의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행복했던 나라 베네수엘라, 수출 제한 위기 직면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은 매년 세계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는데 베네수엘라 행복지수 순위는 올해 102위를 기록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행복 지수는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20위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으로 원유 수출이 국가 재정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주의 국가 베네수엘라는 강력한 무상 복지 정책을 펼치면서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았는데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급전직하중이다.
유가 하락으로 국가 재정 수입이 크게 줄면서 복지에 투입한 ‘머니’가 없기 때문인데 현재 국가 부도 상태에까지 내몰려있다. 최근에는 원유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도 내몰리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사회주의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 및 국영기업과의 채권 거래를 금지하는 금융 제재를 단행한 가운데 원유 수출까지 제한하는 카드를 꺼내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셰일 원유로 유가 하락 유인했지만… 미국이 유가 변동 중심
한때 배럴당 100달러가 훌쩍 넘던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치며 저유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셰일 원유로 대표되는 비전통 자원 개발 확산을 빼놓을 수 없다. 원유 공급 시장 판도를 뒤흔들며 유가 하락을 주도한 셰일 원유 개발은 바로 미국이 주도했다. 셰일 원유 개발이 확대되면서 석유 순 수입국이던 미국은 석유 수출국 대열에 합류했고 전 세계 유가를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를 쥘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OPEC은 물론이고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까지 합세해 생산량을 동결하며 유가 부양에 애를 쓰고 있는데 미국 셰일 유전에서 쏟아지는 원유가 유가 상승을 저지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미국 덕분에 주요 원유 수입국들의 오일달러 지출은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석유 구매 비용이 줄어들면서 지갑은 두툼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한편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분쟁, 이란,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에 대한 경제 제재 카드를 꺼내 든 미국으로 인해 세계 원유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변동성 높아지면 리스크 가능성도 커져
변동성이 높다는 것은 예측 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이니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리스크에 노출될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변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강하다. 환율 변동성이 높으면 수출이나 수입 모든 측면에서 환차 손익 리스크가 높아진다.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 수익(리턴, return)이 높아질 수 있지만, 손실 위험성(리스크, risk)도 동반된다. 유가 변동성도 마찬가지이다. 유가가 치솟거나 떨어지는 과정은 원유 수급은 물론이고 원유 탐사, 개발 등 상류 부문 사업 추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석유를 사용하는 산업 현장의 제조 원가나 생산성을 좌우하고 자동차나 난방 등 생필품 물가도 들썩이게 만든다. 그런데 올해 들어 세계 원유 공급과 수요 시장을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 유가 변동성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미국이 서 있다.
유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 우려에 그칠 수도
유가 변동성 확대 우려가 그저 우려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먼저 미국발 관세 폭탄의 동력이 약화되거나 사그라들 수도 있다. 실제로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 부과는 철강 등의 수입가격을 높이고 미국 내 수많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중국 정부가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미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대두나 유화 제품의 판로가 막히며 미국 국익에 오히려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 압박이 미국을 넘어서 유럽연합까지 확대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미 핵 개발 포기를 선언한 이란이 경제 제재를 또다시 자초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손을 놓을 수도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미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있기 때문에 원유 금수 조치로 인한 변동성 확대 리스크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역시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유가 변동성 이슈의 중심에 위치한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유가 수준이나 변동성 확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는 에너지 시장 동향을 예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역시 유가 변동성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선택을 주시하고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