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Natural Gas)’라고 부르니 마냥 청정한 것 같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천연’이라는 단어는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자연적으로 나온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연가스를 액화시킨 ‘LNG(Liquefied Natural Gas)’도 탄화수소물의 한 부류일 뿐이다. 탄소와 수소의 결합물인 만큼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같은 유해 배기가스가 생성되는 것은 석유나 LPG 등 다른 탄화수소 에너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화석연료 중 유독 LNG의 소비가 장려되고 사용처 확대가 모색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수립한 ‘제13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 계획’에서는 LNG를 바라보는 정부의 긍정적인 시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심지어 바로 직전인 12차 계획에서는 발전용 LNG의 소비 감소가 전망됐는데 이번 13차 계획에서는 늘어나는 방향으로 반전되고 있다. 정부의 장기 에너지 수급 계획 기조를 흔들고 있는 LNG의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다른 화석연료 대비 청정 성능 부각
LNG(Liquefied Natural Gas) 즉 액화천연가스도 화석연료의 한 부류이다. 그런 LNG가 현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총아(寵兒)’로 떠오르는 데는 상대적인 청정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 자체의 화학식만 감안하면 LNG의 상대적인 청정성이 확인된다. 화석연료의 기본적인 구성은 탄화수소이다. 탄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는데 탄소 원자 수가 적고 수소 원자 수가 많을수록 청정하다. LNG는 메탄이 주성분으로 화학식이 CH4이다. 탄소 고리 하나에 수소가 4개 결합되어 있다. 부탄은 C4H10, 복합 탄화수소 계열인 휘발유는 C8H18, C4∼C12, 경유는 C12H26, C16∼C32이니 천연가스의 상대적인 청정성이 높은 셈이다.
신재생에너지 앞선 징검다리 연료로 부상
현 정부 들어서 화석연료 중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에너지가 바로 LNG이다. 원자력, 석탄 중심에서 벗어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전략’ 아래서 LNG는 중요한 브릿지(Bridge) 연료로 부상하고 있다. 브릿지는 가교를 의미하니 LNG가 미래의 궁극적인 주종 에너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석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과정의 징검다리 연료로 LNG 사용을 장려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현 정부는 전달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LNG는 같은 화석연료인 석탄과 비교할 때 온실가스는 44%. 미세먼지는 약 10% 수준만 배출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LNG 소비를 장려하기로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13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 계획’을 수립했는데 2031년까지 매년 평균 0.81%씩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모든 소비 부문서 증가 전망
정부는 2년마다 1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천연가스 수급 계획을 수립, 발표한다. 이 계획에는 장기적인 천연가스 수요 전망과 도입 계획, 공급 설비 확충이나 수급 관리 계획 등이 녹아 있다. 천연가스가 향후 국가 전체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인데 올해 수립된 계획은 2018년부터 2031년까지의 일정으로 짜여 있다. 이번 장기 수급 계획에서는 천연가스를 브릿지 연료로 바라보는 정부의 의지가 명확하게 엿보인다는 평가다. 오는 2031년의 천연가스 수요를 4,049만 톤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올해 수요 예측치인 3,646만 톤보다 11.05%가 늘어난 물량이다. 연평균으로 산정해도 천연가스 수요량은 매년 평균 0.81%씩 증가하게 된다. 특히 가정 및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도시가스와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 모두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2013년 4,008만 톤이 소비되며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로 전환된 천연가스가 다시 전성시대를 맞게 되는 셈이다.
가정용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해소
LNG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된다. 파이프라인 건설,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면서 수요가 밀집된 도심이나 아파트 단지 등을 중심으로 LNG 도시가스가 보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집 건너 한 집꼴인 농어촌 시골 마을이나 수요 밀집도가 떨어지는 지방 소도시에 도시가스 보급망이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사용이 편리하고 가격도 낮은 도시가스를 대신해 직접 구입해 실어 나르면서도 가격까지 높은 등유, LPG, 연탄 같은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도시에 비해 소득이 낮은 지방 중소도시 거주자들이 연료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는 ‘소득 역진성’이 사회 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장기 수급 계획에서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해소를 언급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도시가스가 보급된 지자체는 전국 208곳에 달했는데 2021년까지 216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지자체 수가 229곳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94.3%에 해당되는 지역에 도시가스 공급 인프라가 깔리게 되는 것이니 그만큼 수요도 늘어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가정·일반용 도시가스 수요는 1,185만 톤으로 전망되는데 13차 장기 수급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1년까지 연평균 0.89% 늘어나 1,329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발전용 LNG, 소비 감소에서 증가로 반전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천연가스 소비량은 감소에서 증가로 극적인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직전 수립된 제12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 전망에서 정부는 계획의 마지막 연도인 2029년의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량을 948만 톤으로 예고했다.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가 2차 수급 계획의 시작점인 2015년보다 마지막 해인 2029년에 4.17%가 줄어드는 것으로 전망했던 것. 그런데 이번에 수립된 13차 계획에서는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짜여졌다. 2018년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가 1,652만 톤으로 예상되는데 2031년에는 이보다 3.5%가 늘어난 1,709만 톤에 달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환으로 LNG 발전 활용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말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노후 석탄 발전소를 조기 폐지하는 한편 석탄 발전을 LNG 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이후 2030년까지 건설 추진되는 당진에코 1․2호기, 태안 1․2호기, 삼천포 3․4호기 연료를 LNG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들 발전 용량만 2.1GW에 달한다. LNG 발전 친화 정책의 결과로 2017년 기준 37.4GW 규모의 LNG 발전 설비 용량은 2030년에는 44.3GW로 늘어나는 것으로 예고되어 있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 설비가 늘어나는 만큼 연료 소비도 동반 증가하게 되는 셈이다.
벙커링 통해 LNG 신시장 개척
정부는 이번 13차 장기 수급 계획을 통해 LNG 신시장 개척 방안도 내놓고 있다. ‘천연가스 신시장’을 정부 주도로 창출하겠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LNG 벙커링 시장이다. ‘벙커링(Bunkering)’은 외항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선박들은 구동 연료로 중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공해상을 오가는 선박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에 대한 국제 사회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국제해사기구(IMO)는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 선박 연료로 사용되는 중유의 황 함량을 현재의 3.5%에서 0.5%로 낮춘다고 공표했다. 이 같은 환경 규제에 대응해 선박 연료를 저유황 벙커유로 바꾸거나 연료 연소 후에 발생하는 아황산가스(SO2)를 제거하는 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 아예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정부는 선박 연료를 LNG로 전환하는 ‘LNG 벙커링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노르웨이 선급협회(DNV GL)에 따르면 세계 LNG 연료 추진선은 2018년 현재 106척에서 2020년에는 302척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LNG 벙커링 수요가 증가하게 되는 셈인데 정부는 천연가스 도입 도매 공기업인 가스공사를 통해 외항선박 LNG 벙커링 선점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선도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수소차 달리는 만큼 LNG 소비도 늘어난다
전기차와 더불어 미래 그린카로 주목받고 있는 수소연료전기차 시장에서도 천연가스는 중요한 연료원으로 부상 중이다. 수소차에 사용되는 수소에너지는 일산화탄소 등 불순물에 취약하고 순도가 높은 수소가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천연가스나 LPG, 나프타 같은 화석 연료를 개질(改質)시켜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LNG 같은 화석연료에 열이나 촉매 등을 투입한 화학적인 작용을 거쳐 탄화수소 구조를 변화시켜 수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전기에너지의 생산이 원전, 석탄화력 등 청정하지 않은 발전 방식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궁극의 그린카로 수소차가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안정적인 수소 생산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밝혔고 이번 13차 천연가스 수급 전망에도 포함시켰다. LNG 신시장 개척 방안의 일환으로 ‘천연가스에 기반한 수소 제조·공급 실증센터를 구축해 수소 자동차 등에 대한 안정적인 수소 공급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LNG는 그린카인 수소차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 역할도 하게 되니 수소차가 달리는 만큼의 LNG 수요도 보장되는 셈이다. 에너지 전환 시대, LNG는 가정 상업용은 물론이고 발전 그리고 선박과 자동차 연료에서도 그 쓰임새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