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산책]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하고 건강한 원시적 풍경, 폴 고갱 ‘타히티의 산들’

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10월 이야기입니다.

‘미아(MI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관람객 중심의 미술관

미국 중북부 미네소타 주의 미시시피 강 상류에 있는 큰 도시 ‘미네아폴리스’는 상공업‧경제‧교육‧문화가 발달해서 주의 심장부 역할을 하는 지역입니다. 미네아폴리스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도 미네소타주의 자랑이자 뉴욕미술관‧시카고미술관과 함께 3대 미술관으로 미국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1883년에 세워진 이 미술관을 사람들은 애칭으로 ‘미아(MIA)’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미술관의 경영이 참 흥미롭습니다. 우선 지속적으로 무료 입장제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적 취미만 있다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도 언제든지 관람이 가능합니다. 대신에 자신의 형편이 되는대로 정성껏 돈을 넣는 기부상자가 있습니다. 또한 전시실에서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작품들은 얼마든지 사진으로 담아 올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관람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다

미네아폴리스 미술관의 전경
미네아폴리스 미술관의 전경

그 열린 자세는 건축구조에도 담겨있습니다. 미술관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창문 밖으로 아담한 나무들이 서있는 미술관 정원과 함께 미네아폴리스 시내의 높고 낮은 건물들이 보입니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전시장 입장부터 전시작품 감상의 과정까지 어떤 강요나 제약이 없이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넉넉한 마음으로 관람객을 품는 것이 미네소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비결일 것입니다. 이러한 열린 경영이 가능한 국민적 정서와 미술관 경영 시스템이 부럽기도 합니다. 현재 미네아폴리스 미술관은 인상주의 작품들, 고대 이집트 유물 등 8만 여점의 컬렉션으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서양미술사의 몇 예술운동에 영향을 준, 폴 고갱

방대한 미네아폴리스 미술관 소장품 중 하나인 ⌈타히티의 산들⌋을 탄생시킨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에 대해 알아봅시다.

고갱의 자화상
고갱의 자화상

고갱은 후기 인상파 화가입니다. 반면 미술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는 고갱을 ‘상징파’ 화가로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고갱에 대해 ‘야수파’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합니다.

  • 상징주의 : 예술을 통해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내면의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운동
  • 야수주의 : 기존 인상주의 화가들의 빛과 색에 대한 순간적∙주관적인 느낌의 표현을 거부하고, 빨강∙파랑∙초록∙노랑의 4원색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형태는 극도로 단순화시켜 개성적으로 구현하하는 사조

어느 시대, 어떤 직업인이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고갱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서양미술사의 몇 예술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니 대단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삶을 생각해 보아도 순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갱은 혁명의 열기가 유럽을 달구던 1848년, 파리에서 급진주의 신문사 기자였던 아버지와 페루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때 견습 선원으로 거친 바다의 맛을 경험했고, 20대 때 주식중개인으로 매력적인 돈의 맛을 경험했습니다. 35세 때는 그림을 사던 그가 화가가 되기 위해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타히티에서 원시의 순수성을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루다

그는 혁명적 정신과 격정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만의 양식을 확립하기 위한 예술적 여정을 떠납니다. 서인도제도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을 거쳐 최종 도착한 곳이 1891년 ‘타히티’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원시의 순수성과 열대의 색채를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타히티의 산들, 1893년, Oil on canvas, 68×92cm
타히티의 산들, 1893년, Oil on canvas, 68×92cm

⌈타히티의 산들⌋의 대상이 된 폴리네시아의 타히티는, 고갱이 문명의 삶에서 지칠 때마다 떠올렸던 남태평양 중부의 섬입니다.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오세아니아 대륙에 있지만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있었습니다. 고갱은 타히티를 두 번 방문했는데, 작품의 제작년도인 1981년은 첫 방문의 해입니다. 그렇게나 바라던 고귀한 야만의 땅에 대한 첫 인상일까요? 유럽의 어떤 탐험가는 타히티의 풍경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타히티는 그림으로 묘사될 가치가 있는 에덴의 동산이다


화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타히티 풍경을 표현하다

그림 속 타히티의 산들은 원시적 건강미가 흐릅니다. 흰 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 밑에 원추형 화산인 타히티의 산세가 드러납니다. 타히티의 실제 산봉우리는 단단한 회색 바위산인데, 고갱은 마치 부드러운 흙산처럼 짙은 붉은 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산 밑에는 기름진 해안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누런 풍경이 마치 우리네 가을날 시골의 누렇게 익은 벼이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산과 평야의 경계에 코코넛 나무, 코코스야자, 판다누스, 용선화 같은 열대 과실나무와 식물들이 있는데 남태평양의 햇살이 나무 그림자를 짙게 만들고 있습니다. 햇살도 풍족하고 맑은 공기도 풍족한 타히티는 시각적으로는 맑은 원색의 원시적 열대 자연의 풍경이고, 정서적으로는 나른하고 고요한 열대 자연의 풍경입니다.

이 원시적 에덴의 동산으로 실오라기 같은 천 조각 하나 걸친 폴리네시아계 마오리족 원주민이 평야의 좁은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어깨에 멘 긴 장대의 양 끝에는 열대 과일이 매달려 있는데, 식구들이 나누어 먹을 한 끼 양식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외출에서 돌아오는 그를 알아보고 가족보다 먼저 마중 나온 듯 합니다. 그의 피부색과 산봉우리 색이 동일한 붉은 갈색으로 표현된 것은 건강성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고갱의 화폭에 담긴 티히티 풍경은 풍부하면 풍부한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자연이 내어주는 대로 먹고 입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입니다. 외부인들과의 접촉, 즉 프랑스식 사고방식인 ‘미개함에 대한 현대적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의 타히티 섬은 이와 같이 평화로운 섬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혁명정신이 낳은 산업혁명으로 거대한 자본이 흥청거리던 격동의 19세기, 사회로부터 벗어나 고갱이 그토록 찾아내고자 갈망하던 건강한 자연이자 낙원의 모습입니다.

타히티의 모습
타히티의 모습

하지만 고갱이 이상적 세계를 꿈꾸며 섬에 도착했을 때는, 유럽인이 도착한 100년의 시간 동안 유입된 프랑스식 개발 아래 원주민들의 삶은 문명의 빛과 그림자에 노출된 후였습니다. 그러나 고갱은 개발된 사실적 모습을 그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관점대로 타히티를 그려내었습니다. 즉 외면적∙객관적∙사실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화가의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풍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몇 예술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고갱의 창작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고갱의 ⌈타히티의 산들⌋은 문명에 의해 개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의 순수하고 ‘건강한 원시적’풍경입니다. 그리 속 열대과일을 메고 가는 원주민이 마치 ‘고귀한 야만인’을 꿈꾸던 고갱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이일수 (미술서 작가, 전시총감독)
이일수 (작가, 전시총감독)

대중에게 그림을 통한 지적 유희와 감정적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자 지속적으로 미술서 출간, 전시기획,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작아도 강한, 큐레이터의 도구>,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등 12권 집필. 하나코 갤러리 경영 및 SBS기획전시 총감독 등 다양한 전시현장에서 전시기획 수십여 회.


2019 GS칼텍스 캘린더 ‘세계 미술관 산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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