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산책] 삶의 행복한 표정을 발랄하게 드러내 보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7월 이야기입니다.

필립스 컬렉션, 서양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르누아르의 대표작인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을 소장한 필립스 컬렉션(Phillips Collection)은 미국의 대표적인 근대 미술관입니다. 피츠버그의 백만장자 집안에서 태어난 던컨 필립스와 철강회사의 상속인이었던 그의 아내 마조리 애커가 수도 워싱턴 D.C.에 설립해 1921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필립스 컬렉션 미술관의 매력은 양식과 사조를 뛰어넘어 다양한 서양 근현대 대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컬렉션의 설립자 던컨 필립스는 ‘열린 태도와 다른 시각’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보수적인 미술문화를 지닌 미국에 유럽 모던아트의 선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진취적인 미국 작가들을 열성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그는 국경과 양식, 사조를 뛰어넘어 ‘좋은 작가’를 선호한 만큼 가능한 한 알토란같은 작품을 수집하려 했고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라울 뒤피의 ⌈화가의 아틀리에⌋,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 피에르 보나르의 ⌈야자나무⌋, 에드가 드가의 ⌈멜랑콜리⌋, 에드워드 호퍼의 ⌈일요일⌋ 등이 있고, 마크 로스코의 작품만으로 꾸민 ‘로스코의 방’이 유명합니다.


근현대미술사의 줄거리를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

양식과 사조보다 작가를 기준으로 컬렉션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동시에 서양 근현대미술사의 줄거리를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필립스 컬렉션의 장점입니다. 기존의 관점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이면서 탁월한 작가를 선택할 수록, 미술사를 주도한 작가들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게 근현대 미술사가 지닌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근현대 미술사의 영웅들은 대체로 전통을 파괴하거나 당대의 주류에 도전하고 자신만의 미학적 가치를 집요하게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필립스의 초기 컬렉션 원칙은 매우 현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컬렉션을 일별하는 감상자는 개별 작가의 독특한 개성과 풍미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동시에 미술사적으로 필수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현대 여가 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인상파 걸작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1880-1881년, Oil on canvas, 130×176cm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1880-1881년, Oil on canvas, 130×176cm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은 필립스 컬렉션 미술관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인상파 걸작입니다. 그림이 속 공간은 프랑스 샤투의 센 강변에 있는 메종 푸르네즈의 발코니입니다. 메종 푸르네즈는 당시 뱃놀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배를 빌려주는 렌탈하우스로, 호텔과 식당을 겸했습니다. 한참 배를 타던 사람들이 맛난 음식을 먹고 필요에 따라서는 잠을 자고 갈 수 있게 요식업과 숙박 시설을 함께 운영했던 것인데, 바로 그런 복합시설의 존재로부터 이 무렵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현대 여가 문화의 특징이 그림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뱃놀이 나온 일행이 보트 타기를 멈추고 강변 식당 발코니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날씨는 맑고 강가의 오찬 자리에는 여유와 한가로움이 넘쳐흐릅니다. 온갖 근심 걱정일랑 이 즐거움 속에 다 녹여 버리고 한번 유쾌하게 웃어나 보자는 속삭임이 그림으로부터 울려나옵니다. 인생과 젊음은 유한한 것,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르누아르 특유의 빠른 붓질과 밝고 화사한 색채가 그런 순간의 정서를 더욱 부채질합니다. 물론 빨리, 활달하게 그렸다고 대충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모자가 하나같이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르누아르가 얼마나 대상을 꼼꼼히 관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맨 왼쪽에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여인의 표정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린 샤리고입니다. 르누아르 그림에 자주 모델을 섰던 여인으로, 이 그림이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르누아르의 아내가 됩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연인마저 함께 있으니 화가는 이 젊은 날의 순간을 끝없는 행복으로 채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도 그림 속의 사람들과 어울려 마음껏 웃고 떠들며 놀고 싶습니다.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알린 샤리고의 초상화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알린 샤리고의 초상화

한 평생 행복하고 발랄한 그림만 그린 르누아르

소설가 옥타브 미르보의 말처럼,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역시 삶의 행복한 표정을 발랄하게 드러내 보이는 명화입니다.

르누아르는 아마도 우울한 그림은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는 유일하고 위대한 화가일 것이다.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서일까요? 르누아르는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밝고 희망찬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찍부터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르누아르는 어린 나이에 도자기 공장에 취직해 일했습니다.

이렇듯 환경이 열악했지만 르누아르는 언젠가 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화가 샤를 글레르의 문하에 들어갑니다. 열심히 그림을 배웠으나 배움을 마치고도 아틀리에를 마련할 돈이 없어 친구의 화실에 얹혀 지내게 됩니다. 작업 공간은 그렇게 해결했다고 해도 물감을 사지 못해 그림을 못 그릴 때도 있었으니 그 좌절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럼에도 르누아르는 자신의 좌절과 고통을 그림의 주제로 삼지 않았고, 평생 예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세계를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게 그의 본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인과 꽃, 과일이 차지했습니다. 죽기 몇 시간 전에도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간병인에게 꽃을 준비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류머티즘에 걸려 붓을 쥘 때마다 손마디가 아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예쁜 꽃을 그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 화가가 바로 르누아르였습니다.


이주헌
이주헌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 전공. ‘한겨레’ 문화부 미술 담당 기자, 학고재 갤러리와 서울미술관 관장 역임.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이야기꾼으로 활동, 미술로 삶과 세상을 보고, 독자들이 좀더 쉽고 폭넓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집필과 강연 진행. EBS에서 ‘이주헌의 미술 기행’, ‘청소년 미술 감상’ 등 프로그램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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