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장이 재밌어진다! – 독특한 형식의 개성파 책 3선!!

독특한 형식의 개성파 책들, 책장이 재미지네~

텍스트로만 쭉쭉 흘러가는 99%의 보통의 책, 많이 봤다 아닙니까. 이제 오직 질문만으로 책 한권이 되고, 소설 속에 표가 들어가고, 3페이지가 통째로 여백으로 비어있는 개성있는 책들도 한번 만나볼 차례입니다.

화려한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깊이와 감성을 두 배로 더해주는 외강내강의 책은 만나보기 힘든데요. 여기 밋밋한 책장을 풍성하게 해줄 독특한 형식의 책 3권을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770가지 질문의 맛과 멋을 곱씹다 – ‘무엇 WHAT’

단언컨대, 물음표가 가장 많은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문장이 오로지 질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의문 가득한(?) 책,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파워라이터 마크 쿨란스키의 ‘무엇 WHAT’입니다.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궁극의 질문’이라는 부제와 함께 총 770개의 물음표가 빼곡한 ‘무엇 WHAT’은 질문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꽤나 겁이 나는 책일 수 있는데요. 우려만큼 난해하지는 않답니다.

철학, 심리, 종교, 예술, 정치 등 인류 역사상 중요하다고 꼽히는 20가지의 큰 질문을 ‘어떻게?’ ‘왜?’ ‘무엇?’ ‘언제?’ 등 일상적인 질문들로 뽑아내고, 이에 대한 각각의 글이 매우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지루할 겨를이 없습니다.

짧은 아포리즘(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글) 형식의 작가의 치고 빠지는 전술(?) 덕에 독자는 자신만의 물음표를 안고 곰곰이 생각해볼 여유 또한 갖게 되지요.

작가가 툭툭 던지는 질문은 답이 아니라 생각을 구하게 합니다.
작가가 툭툭 던지는 질문은 답이 아니라 생각을 구하게 합니다.

‘무엇 WHAT’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물음표로 맺어지는 가지각색 문장의 맛입니다.

‘~일까?’ ‘~할까?’로 맺는 기본 문장부터 ‘어떤가?’ ‘~아니한가?’ ‘~했는가?’ ‘~않았던가?’ 등등 다양한 의문문의 향연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 덕분에 질문 특유의 리드미컬함을 지니면서도 술술 잘 읽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질문이 주는 긴장감은 삶에 있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때문에 나도 한번 질문으로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기도 하는데요. 이참에 한번 도전해보시겠어요? (질문으로 끝을 맺는 센스, 알아채셨나요?)

물음표로 이토록 다양하게 문장을 끝낼 수 있다니. 번역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물음표로 이토록 다양하게 문장을 끝낼 수 있다니. 번역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도표와 그림, 방정식이 배치된 예리한 연애소설 –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이라 불리는 ‘우리는 사랑일까’는 책장을 몇 장 넘기는 순간 ‘이건 뭐지?’라는 충격과 함께 ‘이것이 정말 연애소설인가?’라는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내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랑한 제목과는 달리 고작 19페이지에서 탈레스, 플라톤, 헤겔 등의 철학자들이 말한 ‘실재의 본질’을 표로 만나게 되니 글의 장르에 의심이 들 수밖에요. 더욱이 책장을 쭉 넘겨보면 중간 중간 표와 번호 매기기식 정리는 기본이요, 알 수 없는 그림과 기상도가 출몰하고, 평면도와 방정식까지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풍당당하게 ‘연애소설’이라니요.

이게 과연 연애소설 맞냐고요? 좀 어색하지만 맞습니다.
이게 과연 연애소설 맞냐고요? 좀 어색하지만 맞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너를 사랑한다는 건’과 함께 알랭 드 보통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꼽히는 ‘우리는 사랑일까’는 소설이라 하기엔 형식이 독특해 처음엔 어색하지만 다 읽고 나면 분명 최고의 연애소설로 꼽을 만합니다.

속도감 넘치는 연애스토리나 복잡한 치정이 얽힌 자극적 소재는 없습니다. 대신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을 품고 사는(지극히 평범한!) 여주인공 앨리스가 남자를 만나고, 경계를 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본격적인 연애를 하고, 권력의 줄다리기를 하고, 속도 태우는 등의 일련의 사랑의 과정을 이보다 더 디테일하게 풀어낼 수 없습니다. 가끔은 속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할 정도로 예리하지요.

내용과 함께 보면 이만큼 이해를 높이는 그림이 없습니다. 작가의 통찰에 박수를!
내용과 함께 보면 이만큼 이해를 높이는 그림이 없습니다. 작가의 통찰에 박수를!

 특히 남녀 관계를 기후와 건축, 쇼핑, 종교 등을 접목해 다각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이 놀라울 뿐인데요. 그 어떤 연애관련 서적보다 더 치밀하고 섬세하고 묵직한 심리 분석이 돋보이는 ‘우리는 사랑일까’, 시간 때우기 연애소설이 아닌 묵직한 배움과 성찰이 있는 연애소설로 강추합니다. 뜨악했던 다양한 그림과 도형들이 얼마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지 감탄할 준비도 하시고 말이지요.

문장 사이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4D 소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문장 사이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4D 소설,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장의 배열, 글줄의 변형만을 통해서도 그 감정의 진폭을 4D 이상으로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이 있으니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입니다. 줄거리가 아닌 진동으로 기억되는 이 책은 파격적인 형식이 그 몫을 단단히 해줍니다.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오스카, 2차 대전 당시 드레스덴 공습에서 살아남아 말을 잃어버린 할아버지와 철저한 단절 속에서 오랜 세월 고독과 싸워온 할머니.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때론 불안하고, 때론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상실과 소통 불능이라는 거친 감정과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이라는 섬세한 아픔이 있다는 것이지요.

때론 과감한 여백으로, 때론 숨 막힐 듯 빽빽하게 그때그때의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론 과감한 여백으로, 때론 숨 막힐 듯 빽빽하게 그때그때의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진폭을 작가는 실험적인 텍스트로 배가하고 있는데요. 때론 한 페이지에 단 한 문장만을 덩그러니 놓아두고, 때론 3페이지를 그대로 여백으로 두기도 하며, 때론 문장을 겹치고 또 겹쳐 도저히 잃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 뿐인가요. 한번 쓴 글자를 줄을 긋고 다시 고쳐 쓰기고 하고, 빨간 펜으로 교정본 흔적을 남겨두기고 합니다. 중간 중간의 사진 또한 소년의 시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적절한 효과를 주지요. 복잡해보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극대화시켜주며 함께 호흡을 멈추고, 함께 주저하고, 함께 울고, 함께 불안하게 합니다. 이쯤 되면 4D 소설이라는 소개, 과언이 아니겠지요.

4D의 진가는 체험인 거 아시지요? 직접 읽어보며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제대로 빠져들어 보길 바랍니다.

어떠한 제약도 고정관념도 없는, 형식면에서는 최고로 버라이어티 한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떠한 제약도 고정관념도 없는, 형식면에서는 최고로 버라이어티 한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