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축통화 달러도 잡나? 중국의 페트로 위안 세우기

전 세계 무역에서 공통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화폐는 ‘달러’다. 그런데 중국이 막강한 에너지 구매력을 활용해 달러를 대신해 위안화 세우기에 나서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석유를 의미하는 ‘페트로(PETRO)’를 응용해 ‘페트로 달러(petro dollar)’에서 ‘페트로 위안(petro yuan)’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달러화가 글로벌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은 ‘기축통화(基軸通貨)’이기 때문이다. ‘기축(基軸)’의 뜻은 ‘사상이나 조직 등에서 토대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230여 개가 넘는 전 세계 국가들은 저마다 고유의 화폐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화’, 중국의 ‘위안화’, 일본의 ‘엔화’가 그렇다. 그런데 수많은 국가가 상품이나 금융을 거래하면서 각자의 화폐 유통을 고집한다면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럽겠는가? 세계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으로 급격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되면서 최근 국가 부도 위기에 빠져 있는데 이 나라의 화폐로 거래할 나라들이 있겠는가? 기축통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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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축통화의 전제 조건은

19C에서 20C 초반까지만 해도 상당수 국가는 자국 내에서 또 국가 간 거래에서 ‘금(金)’을 사용했다. 금화가 나라의 법정 화폐 역할을 했고 무역 거래 수단이 되는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가 통용됐는데 금화의 공급 유연성에 한계가 노출되고 각 국가가 자국 경제를 독립시킬 필요성이 대두되는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탈되면서 이제는 미국 달러화가 금을 대신한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축통화에는 몇 가지 대전제 원칙이 깔려있다. 일단 유동성이 풍부해야 한다. 전 세계 무역 거래에 사용될 수 있을 만한 풍부한 거래량이 보장돼야 한다. 화폐 가치 안정성도 확보돼야 한다. 글로벌 기축통화국의 경제가 튼튼하지 못하거나 화폐를 마구 찍어내다 보면 가치가 폭락하게 될 테니 널뛰기 변동성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미국과 대척점 서 있는 이란∙러시아, 거부감 덜해

미국 달러화가 글로벌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은 세계 최대 경제 강국이고 그래서 망할 염려가 없다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소련과 경쟁하던 냉전 시대를 벗어나 미국이 군사력으로도 세계 최대 강국이 되고 있다는 점도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달러화를 위협하는 중국 위안화, 위안화 결제

그런데 중국이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자리를 위협하려 한다. 14억 명에 가까운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며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Group of Two)‘ 자리에 서게 된 초강대국 중국이 자국 위안화를 또 다른 기축통화 자리에 세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INE)의 원유 선물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자국 내 에너지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선물거래 화폐로 달러를 대신해 위안화를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지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와 이란처럼 미국과 대척점에 서거나 미국발 경제 제재 대상이 되는 산유국들이 달러를 대신해 중국 위안화로 거래하는 것에 굳이 거부감을 느끼지않는다는 점도 우호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 구매 대금 일부를 위안화로 결제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앙골라, 수단도 위안화 결제 가능성이 높은 산유국으로 꼽히고 있다.

 

사우디 아람코 상장 참여도 페트로 위안 염두에 둔 포석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기업공개(IPO)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배경 중 하나도 페트로 위안을 인정받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는 내년으로 예정된 기업 공개를 통해 5%의 지분을 매각한다는 계획인데 중국 국영석유기업이 인수에 참여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하향 안정화 기조 속에서 아람코 상장이 흥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지분 인수전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으로 사우디 정부가 중국 측 눈치를 봐야 하는 배경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페트로 위안 결제를 유도하거나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기축통화로서의 안정성이 오랜 기간 검증된 달러와 달리 위안화 가치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금을 내세워 방어하려 한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 대응 전략으로 2016년 4월부터 상하이 황금거래소(SGE)에서 세계 최초로 금 기준가를 위안화로 고시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거래소에서 유통되는 위안화를 다시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전략은 위안화 가치의 안정성을 담보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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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아니지만 페트로 위안 시대 대비는 필요

그렇다고 중국 의도대로 ‘페트로 위안’ 시대가 쉽게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경제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 중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 기운이 동력을 잃게 되면 심각한 침체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을 만큼 중국 경제가 사회주의 시스템에 근거한 정부 개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달러화를 대체할 만큼 위안화 가치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중국 경제 정책과 금융 시스템이 아직은 미성숙 상태’라는 보편적인 답변을 고려하면 국제사회가 중국 페트로 위안을 흔쾌히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다만 향후 현실화될지도 모를 페트로 위안화 시대에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원유 시장 리스크 관리 방안을 세울 필요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 연구위원은 “종래에는 공급의 안정성 확보 등 원유시장의 전통적인 리스크만 고려했다면 앞으로는 위안화 관련 리스크까지 포함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며 “이런 맥락에서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고 외화 보유액의 위안화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위안화의 환율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국의 페트로 위안 ‘굴기(屈起, 일어나 섬)’ 시도는 단순한 관망의 대상이 아니라 대비해야 할 과제라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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