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원유 수출 나선 미국, 한국에 미칠 영향은?

지난 1월,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마크 리퍼트 (Mark W. Lippert) 주한 미국 대사와의 단독 인터뷰였는데 본 지가 에너지 전문 신문인 점을 감안할 때 에너지와 관련해 전달할 메시지가 있겠다고 짐작했다. 역시나 리퍼트 대사는 ‘미국의 원유 수출’ 얘기를 꺼냈다.
1975년 이후 40년간 닫혀 있었던 미국의 원유 수출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게 ‘원유 수출국’으로의 지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로 기억한다. 당시 본지는 리퍼트 대사와의 당시 인터뷰 타이틀은 ‘미국 원유 수출되면 한국 에너지 안보 다변화에 기여’로 뽑았다.

주요 산유국이자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미국

미국은 전 세계 원유의 3.2%가 매장되어 있는 주요 산유국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은 세계 9위의 원유 매장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BP 에너지 시장 분석(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원유의 3.2%가 매장되어 있는 주요 산유국이다. 하지만 과거 40년 동안 미국은 원유 수출을 금지해왔다.

자국 내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원유 수출을 금지해 온 것인데 지난해 말 수출 허용으로 급선회했다.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생산된 원유는 미국 내에서만 머물러야 했는데 2015년 12월 18일, 미국 상하 양원은 ‘2016년 통합세출예산법(Consolidated Appropriations Act, 2016)‘의 일부로 미국산 원유에 대한 수출 규제 철폐 규정을 통과시켰고 같은 날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며 효력을 갖게 되었다.

미국산 원유 수출 본격화..우리나라에는 어떤 의미일까

북아 원유 수입국가에게 타 지역 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비정상적 행태

먼 나라 미국의 원유 수출이 새삼 중요한 것은 OPEC이 주도하는 원유 생산 패권을 약화시키고 우리나라 같은 에너지 절대 수입국이 도입선 다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원유 중 약 85% 이상이 중동산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여러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상존하는 중동 지역 의존도가 높아 원유 수급 안정을 담보 받지 못할 개연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독소 조항도 감수해야 한다. 아시아 프리미엄은 중동 산유국들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원유 수입국가에게 타 지역 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비정상적 행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원유는 장기 계약을 맺어 도입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주변국들은 두바이 현물 가격을 기준으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정하는 조정 계수를 더한 높은 가격(OSP, Official Selling Price)을 지불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원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고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불공정 독소 조항인 아시아 프리미엄이 크게 줄어들었거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배경은 미국산 셰일오일 역할이 컸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동북아 3개국이 원유 수입 시장의 절대 고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 할인이 필요한데 공급자 중심 시장에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자원 빈국이라는 약점에 발목이 잡혀 할증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가 비 중동산 원유를 도입할 경우 수송비용 차액 등을 지원해주는 원유도입선다변화 정책을 펼친 것도 공급자 중심 시장의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원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고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불공정 독소 조항인 아시아 프리미엄이 크게 줄어들었거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배경은 미국산 셰일오일 역할이 컸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셰일오일 개발과 그로 인한 미국의 원유 수출이 본격화되면 에너지 절대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해 에너지 수급 안보를 강화할 수 있고 원유 수요자 중심 시장에서 바잉 파워를 행사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균형은 조그마한 틈새로도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중심 에너지시장의 패권을 흔들 미국산 원유

사실 미국이 원유 수출을 금지한 배경은 1970년대를 관통한 오일쇼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793년,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 분쟁으로 촉발된 중동전쟁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과 공급을 크게 줄이면서 무기화에 나섰고 그 결과 국제 석유가격이 폭등하는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OPEC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해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는데 그 결과로 미국은 1975년 12월의 어느 날, 에너지정책 및 절약법(Energy Policy and Conservation Act)을 제정하고 석유 안보와 관련해 정부가 미국산 원유 수출을 완전히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절대 에너지원인 원유는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고 원유 금수 조치라는 ‘칼’을 휘두르는 아랍권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역시 자국 내 원유 수출 금지라는 방패를 꺼내 든 셈이다.

셰일오일 생산의 본격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원유 채굴 기술이 발전하면서 땅속 퇴적 암반층 사이에 산재해 있는 비전통 원유인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중동 중심의 원유 시장 패권을 위협하거나 최소한 견제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유를 자원 무기화하며 서방세계를 압박했던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비전통 자원 개발 기술의 발달로 자원 무기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영국 판타지 소설가인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The One Ring)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industrial writer GScaltex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