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아동학대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아시나요?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펴낸 ‘2014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신고 접수된 사례는 2013년에 비해 36% 늘어난 총 1만 8천 여건. 그 가운데 최종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경우는 약 1만여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중 80% 이상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부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정 내 아동학대를 양육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벼운 일로 치부하곤 합니다. 더욱이 학대 가해자에 대한 교육 상담이나 처벌 등을 강제할 제도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재발을 방치하고 있죠.
얼마 전, 영국의 한 일간지는 부모의 학대와 방치 속에서 자란 아이의 뇌를 일반적인 아이의 뇌와 비교하여 보도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학대받은 아이의 뇌는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아이의 지능 발달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나 건강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희 이야기
외삼촌이 때릴 때 너무 무서웠어요. 나도 다시 웃을 수 있을까요?
겨우 열 살인 연희가 마음톡톡 치료실을 처음 찾았을 때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녀린 몸이 온통 시퍼런 멍투성이였으니까요. 엄마와 둘이 살던 연희의 악몽 같은 나날은 외삼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외삼촌은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연희를 모질게 매질했습니다.
물리적 폭력으로 몸에 생긴 생채기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의 병이었습니다. 연희를 향한 폭력이 거세질수록, 이를 말리는 엄마를 향한 매질이 더해질수록, 어린 연희의 마음은 더욱 멍들어 갈 수밖에 없었죠. 연희를 처음 대면하는 날, 아이는 무척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연희가 꾼 꿈을 표현하는 그림은 폭력적인 외삼촌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몸의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지만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흔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감각적인 재료로 정서를 이완시켜 두려움과 불안을 감소시키는 미술치료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차에 접어들자 연희의 그림은 한층 밝아졌습니다. 도화지에 자신의 미래를 담아내기도 했죠. 불안함과 경계의 그림자도 첫 대면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옅어졌습니다.
또 하나, 연희에게 찾아낸 점은 관심에 대한 욕구였습니다. 연희가 그린 가족의 모습 속에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쓸쓸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더군요. 하지만 정작 연희는 자신이 관심을 원하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자기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콜라주 등의 활동으로 자신을 상징화하는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치료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연희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정이 벅차오릅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관심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죠.
지금 연희는 새로운 집과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불안과 상처를 온전히 씻어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씩씩하게 적응하고 있는 연희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합니다. 비단 연희의 사례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학대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응급조치가 절실한 아이들조차 무관심과 방치로 병들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동학대는 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반드시 들여다보고 꺼내서 치료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입니다. 주변에 혹시 이런 아이가 있다면, ‘학대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한 번쯤은 의심해보세요.
- 겨드랑이, 팔뚝, 허벅지 안쪽 등 다치기 어려운 부위의 상처
- 신체적 상흔으로 자주 병원에 가는 경우
- 부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경우
- 위생 상태가 불결하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경우
- 보호자가 이유 없이 병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
-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 이웃 아동의 울음, 비명이 계속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