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마 Column1 ]
산업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기회를 찾다
이치에 맞는 이론이 잘못 해석되어.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을 얽어 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역량에 집중하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이 말을 특정 산업 군 안에서만 사업을 영위하거나,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는 변해가는 세상물정과 담을 쌓은 소리일 뿐입니다.
산업분류표의 경계가 무너지다
산업(industry)은 다양한 사업을 종류별로 묶어본 것입니다. 1차적으로 농림어업, 제조업, 숙박업 등으로 나누고 다시 채소작물, 운송장비, 호텔 등으로 세분화해서 코드를 부여합니다. 무턱대고 산업분류표에서 다른 칸에 있다고 ‘핵심역량’을 근거로 다른 산업에서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800cc 경차와 최고급 스포츠카는 고객도 사업모델도 다릅니다. 스포츠카는 오히려 고급 패션브랜드와 더 가까운데 자동차산업이라고 묶어도 될까요? 얼마 전 강원도에 가보니 주말농장에서 펜션과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서 식당과 편의점 사업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농장 주인은 핵심역량에 벗어난 문어발식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코드분류가 잣대가 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IT의 발전으로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되는 일이 부쩍 늘고 산업간의 분류는 더욱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를 만들고 아마존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직접 유통서비스에 나서겠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점점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산업을 넘어선 경쟁과 협력
패션을 단순히 ‘섬유산업’으로만 이해한다면 디자인, 배송, 인테리어, 광고 같은 관련사업들이 갖는 의미를 읽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제품과 서비스, 고객집단, 장소가 결합된 ‘동대문 패션업계’로 이해한다면 다양한 사업자들과 사용자들이 맞물린 생태계적 구조가 보입니다. 그래서 관련사업들 사이의 연결과 변화를 읽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흐름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동대문시장에는 옷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볼거리가 같이 있고, 배송업체, 수선집도 있습니다. 여기에 액세서리, 경비업체, 주차장, 마네킹 가게까지 맞물려 있습니다. 맞물려서 가치가 생기니까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긴 결과입니다. 쇼핑몰은 고객이 많이 모여야 분위기도 살고 재미가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라고 하지요. 여기에 나아가 좋은 상점이 모이고 먹거리, 볼거리도 생깁니다. 교차 네트워크 효과라 하는데, 쇼핑몰 경영자는 ‘훌륭한’ 입점업체나 고객을 선별적으로 확보해서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통신업계가 보조금 정책으로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면 관련 어플리케이션이나 액세서리 개발에 경제성이 생기고 결국 데이터 사용요금이 걷히고 이로 인해 단말기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여러 산업을 아우르는 지혜
유능한 쇼핑몰 사업자는 다양한 고객과 입점업체, 관련 사업들을 이어주면서 다양한 이득을 얻습니다. 요즘 말로 ‘플랫폼’의 지위를 갖게 되는데, 여기에 같이 맞물려야 돈을 벌 수 있으니 주위에서는 여기에 편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용자는 윈도우를 써야 숙제든 작업이든 할 수 있고, 개발자도 여기 맞물려야 소프트웨어가 팔리니 마이크로소프트는 절대적 우위를 갖게 됩니다. 과거 종합상사나 건설업체도 금융과 시장을 쥐고 이득을 얻은 플랫폼 사업자입니다.
왜 MP3와 카메라의 기능은 스마트폰으로 들어갔을까요? 사용자가 스마트폰이 더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경험(UX)이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자 접점(UI)를 결정한 결과인데, 요즘 관심을 끄는 핀테크(Fin-Tech)도 사용자 접점을 장악한 사업자가 결제, 인증, 정보처리 등 다른 사업들을 주도하게 되지 않을까요?
융합과 통섭이 필요한 이유
IT가 발달하면서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쉽게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회사원에게는 정보 터미널이지만, 음성통화를 주로 사용하는 노인들에게는 자녀와 소통하는 유일한 공간이고 응급 호출의 소중한 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한 체험과 의미를 담아갈수록 스마트폰의 플랫폼 지위는 더 강력해집니다. 90년대 영화 ‘접속’이 PC통신에 대한 아련한 환상을 더해 주었듯, 스마트폰에 얽힌 감동적 사연을 담은 TV드라마는 사용자들에게 또 다른 문화적 의미를 더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를 만든다는 얘기도 차량의 오디오, 디스플레이, 지리정보, 통신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해 사용자에게 제공해서 고객접점을 장악하면 나머지 기능은 쉽게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좁아진 세상에서 IT의 발달은 훨씬 다양한 융합현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며 먼산 바라볼 시간마저 부족한 직장인들에게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넘나들며 생각하는 ‘통섭’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융합과 통섭을 어려운 전략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고 틀을 깨는 사고를 해나간다면 우리의 시야는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습니다.